[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금융당국이 “무늬만 생산적 금융은 안 된다”며 금융지주사들을 질책했다. 단순 실적 쌓기식 지원에서 벗어나 산업을 이해하고 혁신을 선별할 수 있는 조직 역량을 갖추라는 주문이다.
이에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는 일제히 그룹 차원의 전담 조직 신설과 운영 체계 혁신을 골자로 한 ‘체질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전날 전 금융업권의 '생산적 금융' 담당 임원을 소집해 ‘금융업권 생산적 금융 소통회의’를 개최했다. 그간 각 금융사별 생산적 금융 추진 경과를 점검하는 성격의 자리였다.
이날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강한 어조로 금융권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했다. 권 부위원장은 “지금이 우리 금융 구조를 전환하고 재도약을 추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형식적 실적 집계와 양적 성과에만 집착하는 ‘무늬만 생산적 금융’에 그쳐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을 위해 금융업권 스스로의 노력과 구조적인 변화를 강조한 것이다. 실제로 그간 주요 금융지주들은 금융정책에 발맞추는 과정에서 실적 수치 위주로 일시적인 지원 규모만 늘리는 데 급급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금융권의 자금이 부동산·담보대출 등 비생산적인 부문에 편중되면서 실질적인 혁신 수요를 선별·평가·관리·연계하는 역량이 부재하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지적됐다.
이에 금융당국은 “금융지주사를 중심으로 산업 이해도 제고를 위한 조직을 마련하라”고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안했다. 미래 첨단산업을 육성하고 업종별 맞춤형 금융을 제공하려면 각 지주 내에 산업 분석과 경쟁력 평가 등을 수행할 전문 조직이 필수라는 판단에서다.
금융당국의 이 같은 지적에 금융지주들은 단순 지원 규모 확대가 아닌 조직의 근본적 체질 전환으로 화답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 발표된 각 금융지주의 생산적 금융 추진 계획에는 그룹 차원의 컨트롤타워 신설 등 구조적 개선 방안이 핵심으로 담겼다. 각 금융지주들은 각자의 강점과 특성을 살린 조직 개편과 실행 체계를 구축하며 실질적 변화를 꾀하는 모습이다.
KB금융은 그룹 차원의 ‘생산적 금융 협의회’를 신설했다. KB증권 김성현 대표가 의장을 맡고 주요 계열사 CEO와 전략·재무·리스크 등 핵심 경영진이 참여해 통합 전략을 추진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KB국민은행은 ‘첨단전략산업 심사 유닛(가칭)’과 ‘성장금융추진 유닛(가칭)’을 신설한다. 특히 올해 말까지 부동산금융 영업조직을 축소하고 기업·인프라금융 조직을 확대하는 구체적인 포트폴리오 재편 계획도 내놨다.
신한금융은 그룹 통합관리조직(PMO)을 운영하며 실행력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15대 선도 프로젝트 분야를 지원하는 ‘초혁신경제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추진한다. 이를 위한 애자일(Agile) 전담 조직을 구성하고 산업분석 전문가 신규 채용에도 나섰다. 첨단 소재, 신재생에너지 등 특정 산업 분야 전문가를 직접 채용해 산업 동향 분석과 투자·여신 의사결정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하나금융은 전 관계사가 참여하는 ‘경제성장전략 TF’를 구축했다. AI·에너지·방산·바이오 등 핵심 성장산업에 자금 공급을 확대하고 대전·충남지역 지역펀드 결성, 민간 모펀드 2호 확대 조성 등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내놨다.
우리금융은 지난 9월 발표한 ‘미래동반성장 프로젝트’를 통해 10대 첨단전략산업 분야를 지원한다. 특히 오는 12월 정기인사에서 ‘생산적금융부(가칭)’를 신설, 그룹·계열사 생산적 금융 전환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길 계획이다. 우리금융연구소 내 ‘생산적 금융 연구센터’ 인력을 확대해 유망 산업 발굴과 전략 수립을 지원하는 등 연구소 중심의 전략 설계가 특징이다.
NH농협금융은 이찬우 회장이 직접 주관하는 전사 차원의 ‘생산적금융 활성화 TF’를 신설했다. 내년에는 이를 위원회로 격상해 실천 동력을 배가할 계획이다. NH투자증권의 IMA(종합투자계좌) 사업 지정을 생산적 금융 제1호 사업으로 신청하는 등 모험자본 공급 정책을 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그간 상생금융 확대 등 정부 정책 요구에 기존 하던 것을 모아서 발표해온 것도 사실”이라면서 “생산적 금융 전환의 경우 미래 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도 꼭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