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금융감독원이 금융사들의 소비자보호 체계를 점검한 결과 은행권은 낙제점을 받았다. 특히 소비자보호담당임원(CCO)의 위상과 전문성, 전담 인력 규모가 부족하다는 점이 집중 지적됐다.
이찬진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8월 28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장 간담회에서 모두발언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전날 19개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과의 간담회에서 주요 금융사의 소비자보호 거버넌스 현황 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1월 업권별 주요 금융사 75곳의 소비자보호 거버넌스를 심층 분석한 결과다.
금감원은 2021년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으로 소비자보호를 위한 기본적인 틀은 마련됐으나 여전히 실질적인 운영은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소비자보호 내부통제위원회의 핵심 멤버인 CCO의 평균 서열은 상위 64.7% 수준에 그쳤다. 특히 은행권은 58.2%로 전 업권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상당수 금융사 CCO는 임기가 보장되지 않거나 1년 단기 계약에 머물렀다. 대부분이 초임 임원으로 전문성 또한 낮은 수준으로 파악됐다. 이는 CCO 직책이 전문성을 요하는 독립적인 자리가 아닌, 거쳐 가는 ‘순환보직’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소비자보호 전담 인력 역시 턱없이 부족했다. 전체 금융권의 소비자보호 내부통제 전담인력은 평균 10명이다. 총 임직원 수 대비 0.67%에 불과했다. 은행권은 평균 16명으로 인원수는 가장 많았지만 전체 임직원 대비 비중은 0.35%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거대한 조직 규모에 비해 소비자보호에 투입되는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실제 주요 은행의 CCO 현황을 살펴보면 금감원의 지적이 더욱 명확해진다.
KB국민은행 박영세 CCO와 신한은행 박현주 CCO는 연임으로 2년 이상 임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소비자보호 관련 업무 경력을 보유한 몇 안 되는 사례로 평가된다.
우리은행은 지난 4월 오지영 상무를 신임 CCO로 선임했다. 당초 지난해 말 부행장급인 송윤홍 집행부행장이 CCO를 맡았으나 신설된 ‘위기기업 선제대응 ACT’로 이동하면서 상무급으로 교체됐다.
하나은행 역시 정준형 상무가 2년차 CCO 임기를 수행 중이다. 농협은행에서는 개인디지털금융부문장을 지낸 이강영 부행장이 CCO에 신규 선임됐다. 정 CCO는 감사 부문에서, 이 CCO는 디지털금융 부문에서 경력이 두드러진 인사다.
CCO의 권한 측면에서도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은행의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내부통제규정에서 CCO가 성과보상체계(KPI) 수립 시 금융소비자 측면에서 평가하는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영업 부서의 KPI에 대해 거부권(veto)을 행사하거나 불합리한 상품 판매 정책에 제동을 걸거나 개선을 요구하는 등의 실질적 권한은 찾아보기 어렵다.
금감원은 CCO가 영업부서에 대한 견제·감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독립성·전문성을 확보하고 실질적 권한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CCO가 제시한 의견의 수용 여부 등 이력을 확인할 수 있는 전산시스템 마련도 권고됐다.
은행권은 그간의 개선 노력을 강조하면서도 지적된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 개선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홍콩 ELS 사태 이후 은행권에서 소비자 보호와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며 “이번에 제시된 모범관행 중 상당수는 이미 어느 정도 반영된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