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이찬진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후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하면서 금융권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이 원장이 과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 등 진보 성향 시민단체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온 이력 때문이다.

특히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 시절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권 행사에 강경한 입장을 보여 왔던 만큼 전임 정부부터 추진돼 온 은행권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찬진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취임식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원장은 지난 14일 취임 이후 금융시장 권역별 주요 현황과 부서별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이번 주 업무보고를 마치면 이르면 이달 말 업권별 간담회가 추진될 예정이다.

참여연대·민변 출신의 실세 금감원장이 어떤 메시지를 낼지 금융권은 벌써부터 긴장감이 팽배하다.

금융권이 이 원장의 과거 이력 중 가장 주목하는 대목은 2018~2022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 시절의 행보다. 그는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일관되게 주장하며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 도입과 정착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9년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 부결 건이다. 당시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후 처음으로 경영 참여 주주권을 행사했다. 이 과정에서 이 원장은 “대주주 겸 경영자의 리스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케이스”라며 “기금의 주인인 국민에게 국민연금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스튜어드십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하며 연임 반대 목소리를 주도했다.

그의 소신은 2021년 1차 기금운용 회의에서도 드러났다. 당시 이 원장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가 낮은 기업에 대해 국민연금이 사외이사 후보를 직접 주주제안하는 방안을 발의하며 “중대재해 다발 기업이나 기후변화에 반대 방향성을 가진 기업들을 선정해 적극적인 주주활동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만약 이런 액션을 전혀 안 보여준다면 스튜어드십 코드를 왜 도입했는지 의문”이라며 국민연금의 소극적 태도를 강하게 질타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 원장의 등장은 이미 지배구조 개편 압박을 받아온 은행·금융지주사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금감원은 지난 2023년 12월 ‘은행권 지배구조 모범관행’을 발표하며 ▲CEO 선임·경영승계절차의 공정·투명성 강화 ▲이사회의 집합적 정합성·독립성 확보 등을 주문한 바 있다.

은행권은 이에 맞춰 포괄적 경영승계 프로그램을 조기 가동하고 CEO 장기 연임에 대한 검증 절차를 강화하는 등 자율적인 개편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주주가치’와 ‘공정성’을 중시하는 신임 원장이 부임하면서 개혁의 고삐는 한층 더 강하게 죄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민사회에서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이찬진 원장은 기업거버넌스 개혁 추진의 적임자”라며 “주주가치 중심 경영, 공정한 거버넌스 체계를 강조하고 상법 개정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도록 당근과 채찍을 사용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이 원장도 취임사에서 “기업은 주주가치를 중심으로 공정한 거버넌스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주가조작이나 독점 지위 남용 등 시장의 질서와 공정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 무관용의 원칙으로 엄정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