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아시멘트서 생일날 숨진 故 박경훈.."김용균 비슷한 죽음의 행렬 언제까지"

장원주 기자 승인 2019.11.04 15:10 | 최종 수정 2019.11.05 08:50 의견 0
지난달 22일 아세아시멘트 공장에서 홀로 작업하던 테니스 선수 출신 박경훈씨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자료=SBS뉴스)


[한국정경신문=장원주 기자] 지난해 12월 한국사회에 큰 울림을줬던 고(故) 김용균씨의 산업재해 사망사건과 '판박이'인 사고가 지난달 발생했다.

사고 당시 피해자는 김용균씨와 같이 별다른 안전설비 없이 홀로 작업을 하다 변을 당해 산업현장에서의 '안전불감증'이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박경훈씨는 건장한 32살의 테니스 선수 출신으로 사고 당일이 생일이어서 더욱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하지만 아세아시멘트 측은 사고 초기부터 "왜 (박씨가) 그곳에 갔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선뜻 이해하기 힘든 반응이었다. 이후 회사 측은 "철망 등 허술했던 부분이 있다"면서도 "조사가 진행 중이므로 추정으로 인한 보도는 자제해달라"는 입장이다.

4일 아세아시멘트와 노동계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오후 12시쯤 제천시 송학면 아세아시멘트 공장 3호 킬른(소성로)의 유인송풍기 내부에서 박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박씨는 유인송풍기 출입구로 사용되는 크기 70㎝ 정도의 구멍 안쪽에서 발견됐다. 그는 이 공장에서 시설 점검 업무를 맡고 있었다.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충주지청 관계자는 “사고에 앞서 유인송풍기에 문제가 생겼고 업체 측은 킬른 가동을 중단하고 외부 공기를 유입시켜 시설을 식히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노동부의 현장 점검 결과 유인송풍기는 초속 100m의 속도로 주변 공기를 빨아들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안전시설은 없었다. 이를 토대로 노동부는 박씨가 유인송풍기 내부로 빨려 들어가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박씨는 온몸에 화상을 입고 숨져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킬른은 시멘트를 굽기 위해 사용되는 가마다. 유인송풍기는 시멘트 가열작업 중 발생되는 유독가스와 연기 등을 빼내는 시설이다. 내부 온도는 300도까지 올라간다.

생전 아버지에게 간을 기증할 정도로 효자였던 고인은 슬하에 어린 두 자녀를 두고 먼저 떠났다. 정종삼 명지대 감독은 “착실하고 성실했던 선수였다. 아버지에게 간 기증을 할 정도로 착하고 배려를 잘했다. 열심히 사는 선수였는데 비보를 접하고 많이 놀랐다”며 애도의 마음을 전했다.

유가족들은 회사가 냉각 효율을 높이기 위해 불법으로 킬른 맨홀을 개방한 상태에서 경훈씨 홀로 내부 점검을 하던 중 송풍기가 작동한 것으로 의심한다. 해당 시간대에 안전감시자가 잠시 이탈했다 복귀해 맨홀 내부를 확인하지 않은 의혹도 제기된다.

지난해 12월 태안화력발전소의 김용균처럼 나 홀로 위험을 떠맡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여기 사람이 있다’고 말해 줄 동료가 있었더라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SBS가 확보한 이 회사 자료에는 2인 1조로 일하게 돼있지만 실제로 박씨는 사고 당일 혼자 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가 난 환풍구에 철망만 설치돼 있었더라도 사고를 막을 수 있었지만 그런 설비는 없었다.

아세아시멘트 측은 "(철망 같은 거?) 그런 시설이 좀 미흡했다. 노동부·경찰 조사 중이니까 그 결과를 봐야 될 것 같다. 그러다 보니까 추정해서 하는 것들은 얘기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관계자는 "김용균씨가 사망한 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허술한 안전조건에서 젊은 노동자가 홀로 일하다 유명을 달리 했다"며 " 이슈가 될 때만 반짝하는 새 노동자들의 안전보건과 생명은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관계자는 "최소한 2인 1조 근무수칙이 지켜졌다면 박경훈씨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기본적인 안전보호장치 없는 산업현장, 지난 겨울 그렇게 왜쳤던 "김용균을 더 이상 만들지 말자던 구호가 허탈할 뿐"이라고 혀를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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