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최정화 기자] 엔데믹(풍토병화)으로 일상이 회복됐지만 고물가 장기화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소비 양극화는 지속될 전망이다. 소비 양극화는 프리미엄(보복소비)과 가성비(짠물소비) 수요가 동시에 높게 나타나는 모순된 소비 패턴으로 중간이 실종된 이른바 모래시계형 소비 현상을 말한다.
이런 소비 트렌드를 반영해 유통업계는 플렉스와 짠물소비로 투트랙 전략에 나서고 있다. 백화점과 마트, 편의점 등은 해당 점포에 특화된 콘셉트로 매장을 리뉴얼하고 상품군 재정비에 나서는 모습이다. 초고가와 가성비로 양분화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유통업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 신세계 강남점 3조 클럽..2조원대 백화점 점포 4곳으로 늘어
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백화점 가운데 연 매출 1조원을 넘긴 점포는 12곳으로 역대 최대다. 극가성비를 추구하는 편의점과 마트 매출도 선전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은 올해 연대 최대 매출인 8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마트도 올해 연간 매출이 3년 전 대비 35% 오른 29조7839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봤다.
명품 가방 수입액도 최근 4년 새 200% 넘게 늘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물품 신고 가격이 200만원을 초과하는 가방 수입액은 2018년 2211억원에서 2022년 7918억원으로 258.1% 증가했다.
백화점 매출 규모도 커졌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 지난해 3조원을 훌쩍 넘겼고, 롯데백화점 잠실점과 본점, 신세계백화점 부산 센텀시티점 등이 같은 기간 2조 클럽에 등극했다. 2조원대 백화점 매장이 3년 사이 2배 증가한 셈이다.
■ 홈쇼핑 양극단 소비 성향..엠비슈머의 이중잣대
명품과 해외여행 등 고가 상품부터 대용량 생필품 등 가성비 상품까지 양극 카테고리를 모두 판매하는 홈쇼핑 채널에서도 소비 양극화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롯데홈쇼핑이 2023년 구매 데이터(23.1.1~12.24) 를 분석한 결과 해외여행 상담건수가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하는 등 고가 상품(50만원 이상) 주문건수가 30% 늘었다. 대표적인 생필품으로 꼽히는 욕실용품 주문건수도 80% 이상 늘면서 가성비 수요가 높였다.
비용이 한정된 상황에서 고가 상품에 투자한 만큼 일상생활에서 가성비를 따지는 앰비슈머 소비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 것으로 회사 측은 분석했다. 앰비슈머는 양면성(ambivalent)과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로 소비하는 데 우선순위에 있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지만 후순위에 있는 것에는 최대한 절약하는 소비자를 뜻한다.
박재홍 롯데홈쇼핑 상품본부장은 “2024년에도 소비 양극화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해외 프리미엄 브랜드부터 합리적인 가격대의 가성비 상품까지 고객 니즈에 부합하는 상품들을 지속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 외식비도 극대극..2천원대 도시락부터 20만원대 뷔페 플렉스
소비 양극화는 외식에서도 극명하게 갈린다. 평소 구내식당이나 편의점 도시락을 이용하다가도 가끔 호텔 등 고급 레스토랑에서 플렉스를 즐긴다.
편의점 도시락과 간편식품 매출이 최근 6년간 최대 성장세를 올리고 있는 만큼 편의점업계는 2000원대에서 5000원대 도시락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이에 반해 서울 신라호텔 더 파크뷰, 조선팰리스호텔 콘스탄스, 롯데호텔 서울 라세느 등 특급 호텔들의 연말 뷔페 가격은 1인 20만원을 호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2월 한 달간 수요가 몰리면서 대부분 예약이 마감됐다.
■ 연말 홈파티족 겨냥한 양극 와인과 케이크
지난달 연말·크리스마스를 맞아 홈파티족을 겨냥한 와인과 케이크 소비에서도 양극화 현상은 감지됐다.
GS25와 CU, 세븐일레븐 등 편의점 3사는 각각 유명 브랜드 및 캐릭터와 콜라보해 6000원대~9000원대 저렴한 케이크를 선보였다. 연말과 크리스마스를 겨냥해 출시한 편의점 가성비 케이크들은 완판을 기록하며 불티나게 팔렸다. 이마트 내 블랑제리와 E-베이커리 매장에 판매 중인 신세계푸드의 1만원 내외 크리스마스 베이커리 제품도 누적 판매량 4만개를 돌파하며 전년 대비 매출이 15% 늘었다.
서울 신라호텔 30만원대 케이크와 조선팰리스, 에뚜왈, 시그니엘 서울의 20만원대 고가 케이크도 인기리에 팔렸다. 특히 서울 신라호텔의 럭셔리 케이크는 준비 물량이 조기 완판됐다.
또 세븐일레븐은 지난달 1일부터 10일까지 해당 편의점 샴페인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약 50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전달 연말 기획전으로 공개한 1만원대 극가성비 데일리와인(앙리마티스 앨런스콧 쇼비뇽블랑)이 출시 3주만에 누적 판매량 4만병을 돌파하며 초도 물량이 완판됐기 때문이다. 해당 상품 매출은 같은 기간 전월 동기 대비 2.8배 신장했다. 이 기간 11만∼34만원대 고가 샴페인 5종 판매량도 1만병을 넘어섰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에 따르면 여론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 ‘2024년 국민 소비지출 계획 조사’ 결과에서 전체 응답자의 52.3%는 내년 소비지출을 올해보다 축소할 것이라 답했다. 반면 소득 최상위에 속하는 5분위는 작년보다 12.9%포인트 늘어난 60.9%가 소비지출을 늘리겠다고 응답했다. 이는 소득 1분위(35.5%)보다 2배 가까운 수준으로 소득에 따른 소비 양극화 현상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식품 업계의 양극화 마케팅은 결국 거시경제적 측면의 소득·소비 양극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며 "최근 2년간 고분위 계층의 경우 근로 소득이 큰 폭으로 증가했지만, 저소득층은 오히려 감소하면서 소득 격차 역시 더 커졌다. 이 같은 현상이 식품 업계에 그대로 투영된다고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최지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올해 하반기까지는 불황형 소비 트렌드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며 “다만 경제가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소비자들이 경제 회복을 체감하지 못한다면 지금과 같은 소비 양극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연구위원은 기업 입장에선 싸게 파느냐, 비싸게 파느냐보다 타깃 고객을 누구로 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정하고 최적가를 설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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