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변동휘 기자] 연말을 맞아 통신사들이 전열 재정비에 나섰지만 유독 KT만 동떨어진 모습이다. 차기 CEO 선임 절차로 모든 의사결정이 멈춰있다. AI 전환을 목표로 달려나가야 하는 시점임에도 지배구조에 발목이 잡혀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KT의 내년 임원 인사 및 조직개편이 경쟁사 대비 늦어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8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내년도 사업 구상에 대한 큰 그림을 이미 그렸다. 주요 임원 인사 및 조직개편을 단행한 것이다.
SKT는 AI와 통신 분야를 나눠 양대 CIC(사내독립기업) 체제로 전환했다. 흩어져 있던 각 분야의 역량을 한데 모아 집중력 있게 전개해 나가겠다는 청사진이다. 수장으로는 법조인 출신으로 그룹 내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친 정재헌 CEO를 세웠다.
LG유플러스도 지난 27일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유무선 B2B 사업을 총괄하는 권용현 기업부문장을 부사장으로 올렸고 정성권 IT/플랫폼빌드그룹장을 전무로 승진시켰다. 기술 인재를 중용함으로써 미래 먹거리인 AX와 본업인 통신에서의 경쟁력에 중점을 뒀다는 평가다.
KT는 홀로 잠잠한 상태다. 차기 CEO 선임 과정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섭 대표이사가 해킹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연임을 포기한 영향이다.
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공모를 마감하고 33인으로 차기 대표이사 후보군을 구성한 상태다. 이르면 다음주 중 숏리스트를 공개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다만 차기 CEO가 뽑히기 전까지는 인사 및 조직개편이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새 대표의 경영 방침에 따라 회사의 방향성이 조정될 가능성도 크다. 실제로 구현모 전 대표 재임 당시 KT는 ‘디지코’를 내세웠다. 이후 김영섭 현 대표가 취임하면서 AICT라는 지향점을 설정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 대표가 연임을 포기한 데다 공모절차가 진행 중인 만큼 당장 인사나 조직개편을 단행하기엔 부담이 있지 않겠느냐”며 “차기 대표 선임 이후로 관련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차기 대표이사를 두고 외부의 목소리도 커지는 중이다. 낙하산 인사를 배제하고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세워 혁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인 김우영·황정아·이주희 의원은 KT를 향해 “파벌을 배제하고 실력 중심 인사 원칙을 철저히 적용해야 한다”며 “통신·AI·경영·정책 등 역량을 고루 갖춘 최고 전문가를 선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당 이훈기 의원도 밀실 인사는 안 된다며 선임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와중에 이사회를 향한 시선도 곱지 못하다. 이달 초 규정을 개정해 대표이사가 부문장급 인사나 주요 조직개편 시 이사회의 사전 심의를 받도록 한 점 때문이다. 이를 두고 경영 독립성을 침해했다는 지적이 회사 안팎에서 나오기도 했다.
관련해 소수노조인 KT새노조는 “해킹 사태 수습과 낙하산 논란 없는 새 CEO 선임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앞둔 이사회가 반성과 책임 없이 오히려 권한만 강화해 내부 카르텔 구축 논란을 스스로 키우고 있다”며 “새로운 이사 선임 시 통신·IT 전문가, 소비자·시민사회 대표, 노동이사 등으로 구성 다양화를 이뤄 상호 견제와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논평했다.
총체적으로 취약한 지배구조가 경영에 영향을 주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지난 2023년에도 불안한 지배구조로 인해 초유의 경영공백 상태를 경험한 바 있다. 그 배경으로 이른바 ‘용산 격노설’로 대표되는 외압이 지목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