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국내 은행권의 내부통제 부실 문제가 해외 법인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과거 공시 의무가 없어 베일에 가려져 있던 해외 법인의 금융사고 실태가 금융당국의 공시 강화 조치와 맞물려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본점 전경 (사진=각사)
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인도네시아 현지 법인인 KB뱅크에서 17억6500만원 규모의 업무상 배임 사고가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에 이어 올해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로 터져 나온 해외 법인 대형 금융사고다.
공시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채용된 직원이 지난해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1년간 부적절한 대출을 취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KB국민은행 측은 “현지 법인의 자체 점검 과정에서 의심 정황을 발견해 즉시 감사를 진행했다”며 “관련 직원을 인사조치할 예정이고 현지 수사기관에 고소조치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6월에는 우리은행의 인도네시아 법인인 우리소다라은행에서 거래 기업의 허위 신용장 사기로 인해 약 1078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이어 지난달에는 신한은행의 베트남 법인인 신한베트남은행에서 현지 직원이 37억4880만원을 횡령한 사실이 발각되기도 했다.
이처럼 해외 법인의 대형 금융사고가 연이어 외부에 알려지게 된 배경에는 변화된 공시 정책이 있다. 현행 은행업감독규정에 따르면 국내 은행은 10억원 이상의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의무적으로 홈페이지에 공시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국내 지점에 한정된 규정으로 해외에 설립된 별도 법인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별도의 공시 의무가 없었다.
실제로 2023년 4분기 우리은행의 한 해외 법인에서 10억원이 넘는 금융사고가 발생했지만 세부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당시 우리은행이 공시 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공시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행권에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으며 내부통제 부실에 대한 경각심이 더욱 커졌다. 금융당국이 해외 법인에서 발생한 중대 금융사고에 대해서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권고하기에 이른 것이다.
실제로 공시 의무가 해외 법인까지 확대되자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들이 잇따라 터져 나온 모양새다.
잇따른 해외 법인 금융사고에 대해 은행권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한다. 현지 인력에 의한 사고 비중이 높고 각국의 금융감독 및 법제 차이, 언어·문화적 장벽 등으로 통제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금융사고 예방을 위해 국내 내부통제 체계를 해외 사업장으로 이식하는 과정에서 내부 적발이 늘어난 것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은행 해외 법인에서 금융사고가 발생해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감사를 강화하다 보니 내부통제 부실이 좀 더 드러난 측면도 있다”면서 “해외 법인 관리 체계 전반을 점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