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4대 시중은행이 연말 ‘이중 과징금 리스크’의 늪에 빠졌다.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에 따른 대규모 과징금 예고와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 제재 결정이 맞물리면서다. 두 사안 모두 최종 결론이 미뤄지고 있어 내년도 ‘생산적 금융’ 확대 등 핵심 사업 계획 수립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4대 시중은행 본점 전경 (자료=각사)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8일 홍콩 ELS 판매 은행들에 총 2조원 규모의 과징금 및 과태료를 사전 통보했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이후 역대 최대 제재 규모다. 금융권에선 '불확실성 자체가 가장 큰 위험'이라며 생산적 금융 전환을 위해선 추가적인 자본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은행별로는 판매액이 가장 많은 KB국민은행이 약 1조원, 신한·하나은행이 각각 3000억원대 수준으로 추산된다.

과징금 규모도 문제지만 과징금이 확정될 경우 은행의 자본 건전성에 직격탄이 된다. 과징금은 운영리스크로 분류돼 부과 금액의 6~7배를 위험가중자산(RWA)으로 추가 반영해야 한다.

이 경우 은행의 핵심 건전성 지표이자 주주환원의 기준인 보통주자본(CET1) 비율 하락이 불가피하다. 시장에서 과징금 규모에 따라 최대 50bp 수준까지 CET1 비율이 떨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이번 제재와 관련해 “첫 사례로 소비자 보호 관점에서 금융감독당국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상징적인 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취임 이후 줄곧 소비자 보호와 관련해 강경 입장을 유지해왔다.

다만 사후 구제 노력에 따른 감경 가능성은 열어뒀다. 이 원장은 “소비자 보호를 위한 사후 구제 노력을 충실히 한 기관은 참작해야 하는 부분도 유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율 배상 등을 적극 추진한 은행에 대해선 최대 75%까지 감경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ELS 과징금은 오는 18일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를 거친 뒤 증권선물위원회 심의와 금융위 정례회의를 통해 최종 결론이 난다.

공정위의 4대 은행 담합 제재도 안갯속이다. 공정위는 은행들이 LTV 정보를 공유해 경쟁을 제한했다며 조 단위 과징금을 예고했었다.

하지만 결론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달 19일과 26일 두 차례 전원회의를 열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재심사 결정에 이어 또다시 판단이 미뤄진 셈이다.

공정위는 이달 중 전원회의를 다시 열고 추가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은행들은 단순 정보교환일 뿐 담합은 아니라는 입장이어서 치열한 법리 공방이 예상된다.

금융권에선 '불확실성 자체가 가장 큰 위험'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제재 여부나 과징금 규모가 확정돼야 내년 경영 전략을 성장에 놓을지 리스크 관리에 놓을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과징금 리스크가 이중으로 겹치면서 내년 경영 계획이 안갯속”이라며 “정부가 추진 중인 생산적 금융 전환에 동참하기 위해서라도 추가적인 자본 규제 완화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