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이 미국에 209조원 대 투자를 결정했다. 제조업부터 반도체, AI, 방산, 조선업까지 전방위 투자다.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라운드 테이블에 앉은 우리 기업 총수와 전문경영인은 총 16명이다. 이 자리에서 1500억달러(208조8300억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계획을 발표했다. 내용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부자 나라’ 한국에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켜 줄 비장의 카드도 대거 포함됐다. 부자나라에 대한 트럼프의 경계심을 풀고, 양국의 긴밀한 협력과 우리 기업의 비약적인 발전을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주머니 속 플랜을 짚어 본다. <편집자주>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미국 기업인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정경신문=변동휘 기자] 국내 첨단·전략산업은 이번 방미를 계기로 현지 기업들과의 협력에 속도를 낸다. 자동차·항공·SMR(소형모듈원자로) 등 첨단·전략산업을 중심으로 ‘통큰’ 투자가 이어진 것이다. 향후 주요기업들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에 관심이 집중될 전망이다.
■ 현대차, 미국 내 밸류체인 구축
현대차그룹은 올해부터 4년간 미국에 36조3000억원(26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3월 발표한 30조(210억달러) 규모보다도 늘었다. 이는 미국 시장에 대한 정의선 회장의 의지를 재차 강조한 대목이다.
핵심 투자 분야는 제철·자동차·로봇 등 미래산업이다. 구체적으로는 미 루이지애나 주에 270만톤 규모 전기로 제철소를 건설한다. 또한 지난해 70만대였던 미국 완성차 생산능력을 크게 확대하고 전기차·하이브리드·내연기관 등 다양한 라인업을 선보여 소비자의 니즈에 더 신속하게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부품 및 물류 그룹사들도 설비를 증설해 현지화율을 높이고 배터리팩 등 핵심 부품의 현지 조달도 추진한다. 철강-부품-완성차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을 현지에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로봇과 관련해서는 3만대 규모의 공장을 신설해 현지 생산 허브로 정착시킬 방침이다. 이외에도 자율주행·AI·SDV(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등 미래 신기술 관련 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한다. 보스턴다이나믹스와 모셔널 등 현지 법인의 사업화에도 속도를 낸다.
현대차그룹 측은 “이번 투자를 통해 미국 정부의 정책에 대응하는 한편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기회를 확대해 모빌리티를 비롯한 미래 사업 경쟁력을 강화할 방침”이라며 “동시에 한국과 미국의 경제 협력이 더 확대되고 양국의 경제 활성화가 촉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 한진·두산, 항공·원자력 등 협력 확대
한진그룹은 항공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관련해 대한항공은 45조5000억원(362억달러) 상당의 미 보잉사 항공기 103대를 추가 도입한다. 이와 함께 GE에어로스페이스사로부터 1조원(6억9000만달러) 가량의 항공기 예비 엔진을 구매하고 18조2000억원(130억달러) 규모의 엔진 정비 서비스 계약도 추진한다.
이번 구매 대상에 포함된 항공기는 777-9 항공기 20대, 787-10 항공기 25대, 737-10 항공기 50대, 777-8F화물기 8대 등이다. 2030년말까지 순차 도입 예정이다.
대한항공 측은 “통합 이후 성장에 대비한 선제적 투자의 일환”이라며 “미국과의 항공산업 협력을 한층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스테파니 포프 보잉 상용기 부문 사장 겸 최고 경영자,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대한항공)
두산에너빌리티는 아마존웹서비스(AWS), 엑스-에너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SMR 사업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4개사는 SMR 설계·건설·운영·공급망구축·투자·시장 확대 등에서 협력한다.
특히 AWS가 약 7억달러를 투자한 5GW 규모 SMR 상용화 추진 과정에서 긴밀히 협업할 계획이다. 미국 에너지 디벨로퍼인 페르미 아메리카와도 대형 원전 및 SMR 관련 포괄적 협력 관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두산에너빌리티 측은 “이번 연이은 협약을 계기로 미국 원전·SMR 시장 진출을 더욱 가속화해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 삼성·LG, 물밑 행보 촉각
이번 방미 경제사절단에 포함된 삼성전자와 LG그룹의 행보에도 관심이 집중될 전망이다. 관련해 구체적인 계획을 언급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이들의 주력사업 역시 미국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 협력 논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를 만나 포옹을 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관련해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브리핑을 통해 “엔비디아 슈퍼컴퓨터에 최적화된 칩을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제공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LG 구광모 회장도 이 자리에서 미국 배터리·에너지 분야 기업인들을 만나 사업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LG에너지솔루션과 LG화학 등 관련 계열사들이 대미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행보로 평가된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019년 GM과 합작회사 얼티엄셀즈를 설립하며 배터리 분야 협력을 이어왔다. LG화학도 2015년 AES와 ESS(에너지저장장치)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여기에 국내 기업 최초로 연간 6만톤 규모 양극재 공장을 테네시 주에 건설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