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이 미국에 209조원 대 투자를 결정했다. 제조업부터 반도체, AI, 방산, 조선업까지 전방위 투자다.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라운드 테이블에 앉은 우리 기업 총수와 전문경영인은 총 16명이다. 이 자리에서 1500억달러(208조8300억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계획을 발표했다. 내용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부자 나라’ 한국에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켜 줄 비장의 카드도 대거 포함됐다. 부자나라에 대한 트럼프의 경계심을 풀고, 양국의 긴밀한 협력과 우리 기업의 비약적인 발전을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주머니 속 플랜을 짚어 본다. <편집자주>
젠슨황과 이야기 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한국정경신문=임윤희 기자]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에 속도가 붙는다. 한미 경제동맹이 반도체, 조선, 전력 인프라 등 전략적 확산 계획을 내놨다.
앞서 지난 25일(현지시간)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구자은 LS 회장 등은 신규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반도체·조선·전력 인프라·핵심광물 등 4대 전략 산업에 집중 투자해 한미 경제협력을 안보동맹 차원으로 격상시키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 SK·한화·HD현대, 반도체·방산·조선 협력 강화
SK는 현재 추진 중인 미 현지 반도체 생산 거점 구축 의지에 변함이 없음을 재확인했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파예트 5조4000억원(38억7000만달러) 투자를 진행 중이다. 이르면 연내 착공한다.
SK하이닉스는 미국에 AI 메모리용 AVP(어드밴스드패키징) 생산 기지를 구축한다. 이를 통해 2028년 하반기부터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양산을 목표로 한다. 현재 인허가 등 공장 설립을 위한 사전 작업을 진행 중이며 퍼듀대학교와의 협력을 통해 연구개발 시설도 함께 운영할 계획이다.
미국 내 HBM 생산 기지 확보가 확보되면 SK하이닉스는 중국 의존도를 낮추면서 미국 빅테크와의 협력을 심화시킬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칩스법에 따라 6400억원(4억5800만달러)의 보조금과 6980억원(5억달러)의 대출을 지원한다.
한화그룹은 김동관 부회장은 조선·방산 분야 협력을 강조했다. 김 부회장은 한화오션이 보유한 미 현지 한화 필리조선소를 중심으로 조선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특히 한화는 스마트 시스템 도입, 인력 재훈련, 기술이전 등을 통해 2035년까지 현재의 10배 이상의 건조 능력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한화 필리조선소 추가 투자를 비롯해 현지 조선소 추가 인수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현지에서 우리 기업의 조선업 투자의 중요도를 인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방미 기간 중 필라델피아 한화필리조선소를 방문한다. 한화는 MASGA 프로젝트와 방산 협력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HD현대는 워싱턴DC에서 서버러스 캐피탈·한국산업은행과 함께 '한미 조선산업 공동 투자 프로그램 조성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수십억달러 규모의 이번 투자 프로그램은 'MASGA' 프로젝트의 실질적 첫 사례로 평가된다.
HD현대 관계자는 "미국 조선산업 재건을 위한 수십억달러 규모의 투자 프로그램을 조성할 계획"이라며 주요 투자 분야로 ▲미국 조선소 인수 및 현대화 ▲공급망 강화를 위한 기자재 업체 투자 ▲자율운항·AI 등 첨단조선기술 개발을 제시했다.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참석 (사진=연합뉴스)
■ LS·고려아연, 전력·광물 투자 주도
LS그룹은 LS전선 해저케이블·소재 사업, LS일렉트릭 전력기기·시스템 사업, SPSX(슈페리어에식스) 권선·통신 사업 등에 약 30억달러를 투자한다.
LS그룹 관계자는 "LS전선이 미국 버지니아주 체사피크에 HVDC 해저케이블 생산 공장 건설에 1조원을 투자하고 있다"면서 "LS일렉트릭은 미국 텍사스주와 유타주 생산시설에서 배전반과 중·저전압 전력기기를 양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AI 경쟁 우위를 위해 노후 전력망 개선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LS의 투자는 미국 전력 인프라 현대화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는 전략적 포석이다.
LS일렉트릭은 엔비디아 등 미국 빅테크와 전력 솔루션 공급 계약을 연이어 체결하며 전체 매출에서 북미 비중을 2023년 17%에서 2024년 20%까지 확대했다.
고려아연은 록히드마틴과 '게르마늄 공급·구매 및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고려아연은 울산 온산제련소에 1400억원을 투자해 게르마늄 공장을 신설하고 2027년부터 연간 10톤을 생산한 후 록히드마틴에 납품할 예정이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핵심광물 공급망 안정화는 국익 차원에서 중요한 전략적 과제"라며 "한·미 양국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공고히 다지는 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게르마늄은 야간투시경, 열화상 카메라에 필수적인 전략 광물이다. 중국이 지난해 12월 미국 수출을 중단하면서 공급망 확보가 경제·안보 차원에서 중요한 과제로 부상했다.
이번 협력은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는 미국과 핵심광물 가공 역량을 보유한 한국이 만나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새로운 축을 형성하는 의미가 크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투자 발표는 한국 기업들이 트럼프 2기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면서 중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에서 미국과 운명공동체임을 확인시키는 전략적 포지셔닝"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