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디지털화폐 시대 주도권을 놓고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경쟁 중인 상황에서 은행권의 셈법이 복잡하다. 일단 한국은행 주도 CBDC 실증사업에 참여하는 동시에 원화 스테이블코인 공동 발행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등 '이중 전략'을 꾀하는 모습이다.

디지털화폐 시대 주도권을 놓고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경쟁 중인 상황에서 은행권의 셈법이 복잡하다. (이미지=챗GPT)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지난 23일 열린 이창용 한은 총재와 18개 회원사 은행장 간담회에 앞서 참석 은행들에 참고자료 성격의 ‘한은 관련 업무 현안 사항’ 보고서를 배포했다.

보고서에는 한은이 CBDC의 실용성을 시험하는 ‘프로젝트 한강’에 대한 입장도 담겼다. CBDC는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 법정화폐다. 이 프로젝트에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BNK부산 등 7개 주요 시중은행이 참여했다. 일반인 10만명을 대상으로 은행 예금을 예금토큰으로 전환해 결제 수단으로 활용하는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은행권은 한은이 CBDC 실험에 대한 명확한 상용화 계획이나 장기적인 비전 없이 은행권에 막대한 비용과 자원 투입을 요구한다고 지적한다. 1차 실험에서 약 300억원을 부담했음에도 한은이 비용 분담에 소극적이며 실험만 재촉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특히 올해 4분기로 예정된 2차 실험에서는 개인 간 송금, 가맹점 확대 등 추가 개발과 의심거래보고, 이상거래 감지 등 정책 요건까지 요구돼 은행 내부적으로는 새로운 사업 수준의 절차와 예산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은행들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과 관련한 한은의 입장에도 의구심을 드러냈다.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 금 등 자산에 연동돼 가격 안정성을 확보하는 민간 발행 디지털 화폐다.

은행권은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 정책 방향과 관련해 한은과 금융위원회의 의견 조율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한은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금융 안정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반면 은행권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에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CBDC보다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지급결제시스템 구축에 집중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글로벌 트렌드에 맞는 정책 전환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판단에서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이 지난 11일 대표발의한 ‘디지털자산기본법안’은 은행권의 이러한 조바심을 더욱 부채질 했다. 법안의 핵심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법적으로 허용하되 사전 인가제 및 자기자본·준비금 요건 등 투자자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특히 발행 주체에 은행뿐 아니라 비금융권도 포함시켜 사전 인가를 받으면 발행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는 기존 가상자산법보다 훨씬 진전된 내용으로 디지털자산·화폐 시장의 본격적 제도화를 예고한다.

은행권은 금융결제원, 블록체인 업계와 스테이블코인 기술 협의체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에 동참하고 있다. KB국민·신한·우리·NH농협·IBK기업·Sh수협 등 주요 시중은행들은 금융결제원과 함께 사단법인 오픈블록체인·DID협회 산하에 ‘스테이블코인 분과’를 신설하고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컨소시엄은 미국과 일본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해 코인 발행 방식을 논의한다. 올 하반기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법체계가 마련되면 이르면 연말께 합작법인(JV) 설립을 거쳐 본격적인 발행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합작법인이 공동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이를 위한 준비자산은 은행에 예치·신탁하는 사업모델을 구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CBDC가 먼저냐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먼저냐 하는 것은 정책의 영역”이라면서도 “디지털 화폐 도입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 보고 은행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