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한국은행이 야심차게 추진 중인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사업, 일명 ‘한강 프로젝트’가 초기 단계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한은이 명확한 상용화 계획이나 비용 분담 없이 시중은행들의 참여만을 요구하면서 은행권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연합회(회장 조용병)는 한국은행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금융 현안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23일 18시 은행회관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채 초청 은행장 간담회를 개최했다. 간담회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은행연합회)

24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전날 이창용 한은 총재와 은행장 간담회에 앞서 참석 은행들에 참고자료 성격의 ‘한은 관련 업무 현안 사항’ 보고서를 배포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권은 현재 진행 중인 1차 테스트에는 적극 협조하고 있지만 2차 테스트 진행에는 한은과 이견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은행들은 2차 테스트가 개인 간 송금 및 가맹처 확대 등으로 범위가 넓어지면서 기존 테스트의 연장이 아닌 새로운 사업과 동일한 수준의 내부 절차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의심거래보고제도(STR)와 이상거래감지시스템(FDS) 등 정책 요건 적용, 추가 전산 개발, 사업 예산 집행 등의 문제가 새롭게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은행권은 한은에 2차 테스트 진행을 위해 한은과 은행의 모든 유관 부서가 참여하는 ‘CBDC 일반 이용자 실거래 테스트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상용화 계획을 포함한 장기 로드맵을 수립한 후 사업 일정을 현실적으로 재조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은행권의 불만은 이미 1단계 한강 프로젝트 준비 과정에서부터 불거져 나왔다. 은행권에서는 1단계 준비 과정에서 한은이 갈팡질팡하며 인프라 구축과 비용, 가맹처 확보 등을 각 은행에 떠넘기고 재촉만 했다는 불만이 나왔다. 실제로 1단계 테스트에 참여한 6개 시중은행은 인프라 구축과 마케팅 등에 각 30억원에서 60억원 가까이 투자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막대한 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은 직접적인 이익을 확신할 수 없었으나 중앙은행 주도 프로젝트인 만큼 최대한 협조했다는 입장이다. 당초 지난해 말 시작될 예정이던 1단계 테스트가 올해 4월에야 출발한 것 역시 이러한 혼란 때문이었다는 것이 은행권의 공통된 지적이다.

은행들의 불만이 고조되자 이창용 총재가 직접 나서 은행장들의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2단계 프로젝트에서는 한은이 절반 이상 비용을 분담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용 문제 외에도 한은의 일방적인 결정과 소통 부재도 은행권의 주요 불만 사항이다. 한강 프로젝트 관련 세부 내용이 자주 변경되거나 예정된 사업의 시행 시기가 불확실해 은행들이 어려움을 겪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스테이블코인과 관련해서도 은행들은 한은의 주도권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은행연합회 보고서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 정책 방향에 대해 한은과 금융위원회 간 의견 조율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은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화폐 대체재가 될 수 있고 비은행 금융기관의 발행은 내로우뱅킹 허용과 같으므로 감독 가능한 은행권부터 발행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융위는 통화당국의 우려를 이해하면서도 제도화 과정에서 입장 조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근 발의된 ‘디지털자산기본법안’ 역시 은행뿐 아니라 비은행 회사에까지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권은 한은만 믿고 가기보다는 은행들끼리 컨소시엄을 구성하거나 합작법인을 설립해 공동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사업 모델을 구상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이 확장성을 가지려면 핀테크(금융기술) 이런 쪽과도 협업할 필요가 있다”며 “따라서 스테이블코인 관련 논의를 한은이나 은행끼리만 하는 게 아니라 페이 업체, 코인거래소, 블록체인 업체 등과도 꾸준히 만나 스테이블코인 발행 준비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