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가계대출 관리를 위해 유주택자 대출 취급을 제한한 은행들이 당국의 ‘오락가락’ 행보에 또 다시 비상이 걸렸다. 일부 은행들은 일단 예외 요건을 적용해 실수요자의 문틈을 열어 주는가 하면 나머지 은행들도 당국과의 조율을 통해 보완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전날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주택담보 및 전세자금대출 취급 시 실수요자 예외 요건 9가지를 안내했다. 이날부터 유주택자 주담대·전세대출 제한을 골자로 한 ‘가계부채 효율화 방안’ 시행을 앞두고 실수요자 보호를 위한 대출 취급 예외 요건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다.
우선 결혼을 앞둔 유주택자가 수도권에서 주택을 구입하거나 임차하는 경우 청첩장이나 예식장 계약서 등을 제출하면 주담대·전세대출이 가능하다.
또 수도권 지역으로 직장이 변경된 경우, 자녀가 수도권 지역으로 진학하거나 전학한 경우, 수도권에서 질병치료 및 부모봉양이 필요한 경우 증빙 자료를 내면 유주택자도 전세대출이 가능하다. 이혼, 분양권·입주권 보유, 분양권 취득의 경우도 서류 제출을 통해 예외 적용을 받을 수 있다.
당초 우리은행은 이날부터 주택을 한 채라도 소유한 경우 서울 등 수도권에 주택을 추가로 구입하기 위한 목적의 대출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투기적 수요는 억제하는 대신 꼭 필요한 실수요 중심으로 가계부채관리를 효율화한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지난 4일 이복현 금감원장이 가계대출 현장간담회에서 “갭투자 등 투기수요 대출에 대한 관리 강화는 바람직하지만 대출 실수요까지 제약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은행은 가계부채 효율화 방안 시행 하루 전날 부랴부랴 예외 요건을 마련한 것도 실수요자를 보호하라는 당국의 취지에 동참하기 위해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예외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다양한 실수요자 사례에 대해서도 주관부서에서 ‘실수요자 심사 전담팀’을 신설해 금융소비자의 불편함이 없도록 세심하게 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 발언 이후 유주택자에 대한 대출 취급 제한 조치를 마련한 KB국민은행의 경우는 처음부터 이사, 갈아타기 등 실수요자의 ‘기존 보유 주택 처분조건부’ 주담대는 허용하기로 했다.
5일부터 구입 목적 아파트담보대출 취급 대상을 무주택자로 한정한 케이뱅크도 기존 주택 처분을 서약하면 대출을 내준다.
다만 주담대 취급 대상을 무주택자로 한정한 신한은행과 카카오뱅크의 경우는 아직 실수요자 예외 요건을 두고 있지 않다. NH농협은행은 주택을 2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에 대해서만 주담대 취급을 제한하고 있고 하나은행은 주택 보유 여부에 따른 취급 제한을 적용하지 않은 상태다.
이들 은행은 급하게 기존 정책을 수정하기보다는 금융당국과의 조율 및 내부 검토를 거쳐 가계대출 효율화 방안을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이복현 금감원장과 주요 시중은행장은 오는 10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 원장이 지난 4일 “추석 전 빠른 시일 내에 은행장 간담회 등을 통해 가계대출 관리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10일 회의가 마무리돼야 명확한 지침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며 “실소유자에 대한 기준이 잡히면 모든 은행들이 동일한 요건을 적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금융소비자 혼란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계대출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은행권에서는 가계대출과 관련 금융당국의 오락가락한 발언에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애초에 유주택자에 대한 가계대출 취급 제한 조치가 금리 인상 대신 다른 관리 수단을 강구하라는 당국의 지침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금리 인상 대신 가계대출 총량을 관리하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카드 자체가 많지 않다. 유주택자에 대한 대출 취급 제한은 지난 2021년 가계대출 총량 규제 당시 도입돼 어느 정도 효과가 입증됐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국이 최근 언론 등을 통해 지난달 가계대출 증가 폭이 관리 수준 범위를 벗어났다거나 강한 개입 필요성을 느낀다고 밝히면서 은행은 거기에 맞춰 대출 제한의 수위를 높인 것”이라며 “여기에 실수요자에 대한 관리까지 동시에 주문하면 은행 입장에서는 도대체 가계대출을 조여야 하는 건지 늘려야 하는 건지 당황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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