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잔에 천원 소주 시대..주류 출고가 동결 입장 번복 '식당가 꿈틀'

하이트진로 출고가 인상 후 소주 도매가 줄인상
8일 중앙회 도매가 동결 결의⋅인상요인 흡수키로
중앙회 “강제성 없어..내년 출고가 유지 어려워”
공정위, 주류도매업협회 담합 혐의 조사 중
국세청, 기준판매비율 도입..제품가 인하 기대

최정화 기자 승인 2023.11.21 13:37 | 최종 수정 2023.11.21 14:40 의견 0
매장에 비치된 하이트진로 주류 테라, 켈리 등 (자료=하이트진로)

[한국정경신문=최정화 기자] 소주 가격 7000원이 현실화되는 시기가 좀더 빨라질 전망이다. 최근 소주값 동결을 결의했던 주류도매사들이 돌연 입장을 바꾸면서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전국 주류도매사들이 잇따라 소주 납품가 인상에 합류하고 있다. 지난 9일 하이트진로 출고가가 인상되자 이날 즉시 납품가를 반영한 곳도 나타났다.

한국종합주류도매업중앙회는 지난 8일 결의대회를 열고 전국 16개 시·도 종합주류도매업협회장이 전원 참석한 가운데 소주 도매 가격 동결을 결의했다고 9일 보도했다.

전국 16개 시·도협회와 1100여개 도매사업자를 회원사로 두고 있는 중앙회는 정부의 주류관련 법규사항 이행을 돕고 건전한 주류 유통 질서 확립을 지원하기 위한 단체다.

중앙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협회장들은 ‘서민보호·물가안정·민생안정·도매가격 동결’을 외치고 '소매업소와 소비자 상생을 위한 결의문'을 채택했다”며 “결의문에 따라 전국 종합주류도매사업자들은 기업의 자구노력과 인상요인을 흡수해 주류 도매가격 인상을 최대한 자제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면허사업자로서 정부 물가정책에 적극 협조하고 서민경제 부담 최소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다짐했다”고 전했다. 또 음식점을 비롯한 개별 거래처에도 소주 도매가격 동결 동참 홍보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도매사가 인상요인을 최대한 흡수해 소주 가격 인상을 당분간 동결함으로써 민생안정을 위한 정부 물가안정 정책에 힘을 보태겠단 취지다.

하지만 일부 주류도매사들은 하이트진로의 가격인상을 틈타 발빠르게 태세를 전환했다. 이후 다른 도매사들도 인상 대열에 은근슬쩍 끼어드는 분위기다.

중앙회 측은 “강제성이 없는 점을 감안해 최소 절반 이상이 동결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했다”면서 “고통 분담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출고가 동결을 택했지만 장기간 마진 축소를 감당하긴 어렵다 보니 내년까지 출고가를 유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9일부터 참이슬 후레쉬와 오리지널 등 소주 출고가를 6.95% 올렸다. 또 테라와 켈리 등 맥주 출고가도 평균 6.8% 인상했다. 오비맥주도 지난달 11일부터 카스와 한맥 등 주요 맥주 출고가를 평균 6.9% 인상한 바 있다.

도매사 납품가 인상폭은 병당 200원가량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출고가 인상에 도매가까지 인상될 경우 식당 소주 가격 인상으로 직결되는 상황이라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이다.

당분간 술값 동결을 기대했던 소비자들의 실망감은 클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비록 강제성은 없는 결의대회였지만 공식적으로 소주값 동결을 발표한지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입장을 바꾼 건 소비자를 기망하는 처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술자리가 많아지는 연말이 코앞이라 이번 주내로 납품가를 올리는 도매사들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봤다. 연말 특수는 수익과 직결되는 만큼 주류도매사들에겐 놓치기 아쉬운 시기라는 것이다.

■ 공정위, 주류도매업협회 4곳 담합 혐의 조사

여기에 도매업계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가격 담합 혐의를 조사 받고 있던 터라 이날 진행된 결의대회가 혐의를 피하기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된다. 또 주류업계와 식당 인상 마진에 비해 도매사 마진율이 높다는 비판도 나온다.

공정위는 지난달 소주와 맥주 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수도권 주류도매업협회 4곳의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는 현장 조사 결과를 토대로 담합 등 부당 행위 여부를 파악한 뒤 심사보고서를 작성해 발송할 예정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특정 조사에 대해서는 확인이 어렵다”면서도 “민생 밀접 분야의 불공정 행위 의혹이 있으면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 국세청, 기준판매비율 적극 도입..주류값 인하 가능성

정부도 국산 주류와 수입 주류간 과세형평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준판매비율 제도 도입을 검토한다.

국세청은 지난 20일 국내 주류업계 관계자 및 주류 제조·정책·마케팅 전문가가 참석한 가운데 'K-SUUL 정책세미나'를 처음으로 개최하고 '국산주류 기준판매비율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기준판매율은 개별소비세 과세표준을 정할 때 적용하는 비율이다.

현재 국산 주류는 제조원가에 광고·인건비 등을 합한 금액에서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반면 수입 맥주는 수입신고 가격과 관세에만 세금을 적용하고 있어 국내 주류업체에 불리한 세법이란 지적을 받아왔다.

조성기 주류정책 전문가 경제학박사는 우리나라 주류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주류는 일반재화와 다른 규제대상 물질이라는 사실을 인식해 여러 부처 합의를 통해 주류 정책 컨트롤 타워를 결정하고 주류에 대한 정책관부터 확립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세청은 국산 주류에 기준판매율을 도입하기 위해 주세법 시행령을 개정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국세청은 기획재정부, 농림축산식품부, 공정거래위원회, 주류관련 전문가 및 협회 임원 등으로 구성된 주류경쟁력강화 전담팀(TF)을 신설하고 주세법이 조기에 시행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제도가 시행될 경우 국산주류의 세부담 감소에 따라 소주 등 주류 가격 인하도 기대된다.

장인섭 하이트진로 전무는 이날 정책 세미나에서 "우리 술이 국내시장에서도 역차별 받지 않도록 기재부와 협의해 국산주류 기준판매비율 제도 도입 시 조기 시행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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