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전액 손실이 확정된 ‘벨기에펀드’ 사태를 두고 은행권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강력한 소비자 보호 조치에 나서면서 신중한 입장을 취해온 우리은행이 금융당국의 ‘배상 압박’을 정면으로 맞게 된 것이다.
선제적 배상으로 리스크를 관리한 KB국민은행과 달리, 우리은행은 금감원의 현장검사 결과와 배상기준 재조정이라는 더 큰 불확실성에 직면했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 본점 전경 (사진=각사)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전날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일환으로 추진한 첫 ‘경영진 민원상담 DAY’에서 벨기에펀드 불완전판매 이슈를 직접 다뤘다. 해당 민원은 한국투자증권에서 가입한 사례였지만 이 원장의 적극적인 문제 제기는 은행권 주요 판매사인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에도 불똥이 튀는 형국이 됐다.
벨기에펀드는 2019년 6월 설정된 부동산 펀드다. 벨기에 정부 기관이 사용하는 현지 오피스 건물의 장기 임차권에 투자하는 상품이었다. 총 약 900억원의 투자금이 모집됐다. 한국투자증권이 약 589억원, 국민은행이 약 200억원, 우리은행이 약 120억원을 판매했다.
벨기에 정부 기관 임차율 100%를 강조하며 ‘안전한 투자’로 홍보됐다. 하지만 유럽 부동산 시장 악화와 금리 급등, 현지 금융기관 대출 상환 실패 등으로 임차권 매각에 실패하면서 투자금 전액이 손실 처리됐다.
현재 관건은 자율배상에 따른 배상 기준 산정이다. 국민은행은 투자 원금의 40~80% 수준에서 선제적인 자율 배상을 진행 중이다. 현재 78% 이상의 투자자 계좌에 대한 자율 배상을 마쳤다.
반면 우리은행은 아직 자율 배상 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우리은행은 이사회 부의 등 절차를 거쳐 연내 배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다만 펀드 투자위험등급 오기 등 시스템적인 불완전판매 요소가 없다고 보고 있어 피해 보상비율 산정에 신중한 입장이다.
두 은행이 자율배상에서 온도차를 보이는 것은 불완전판매 인정 여부와 직결된다. 국민은행은 벨기에펀드 투자위험등급을 잘못 표기해 투자성향과 맞지 않은 투자자에게 불완전판매한 점을 인정했다.
반면 우리은행은 이러한 시스템적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명확한 근거 없이 자율배상에 나설 경우 향후 주주들에 대한 배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이 원장은 현장조사 후 불완전판매가 확인되면 기존 배상비율을 포함해 모든 분쟁 민원의 배상 기준을 재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선제적 배상에 나선 국민은행과 달리 우리은행은 자체적인 배상안 마련에 부담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불완전판매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체적으로 높은 배상 비율을 결정하기는 어렵고 낮은 배상 비율을 제시할 경우 금감원의 소비자 보호 기조와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의 강력한 배상 권고나 명확한 가이드라인, 분쟁조정위원회 회부 등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 됐다고 보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우리은행이 자체적인 배상 비율을 결정하기보다 향후 진행될 금융당국의 명확한 가이드라인 제기나 분쟁조정위원회의 권고안 등 공식적인 절차를 기다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