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증권부 윤성균 차장

[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지난 국민성장펀드 국민보고대회 토론회장.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이 대통령 앞에서 이례적인 ‘반성문’을 읽어 내려갔다. 지난 이자장사를 반성하며 ‘생산적 금융’으로 나아가겠다는 다짐이었다. 이 보기 드문 장면이 일회성 ‘쇼’로 끝나지 않으려면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10일 서울 마포구 프론트원에서 열린 ‘국민성장펀드 국민보고대회 토론회’에서 진 회장은 “은행들이 그간 담보 위주의 쉬운 영업을 해왔다는 비판을 엄중히 받아들인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른바 ‘이자장사’라는 국민적 비판에 대해 은행권을 대표해 반성문을 낭독한 셈이다.

진 회장은 자기반성에만 그치지 않고 정부를 향한 날카로운 제안을 던졌다. 바로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에 대한 금산분리 규제 완화다.

현재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는 CVC를 자회사로 돌 수 있지만 반드시 지분 100%를 보유해야 한다. 차입 규모는 자본 총계의 200%, 외부 자금 조달은 총출자액의 40%로만 제한된다. 또 직접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펀드를 조성하고 운영하는 GP(운용사) 역할은 할 수 없다.

진 회장은 “우리나라만 CVC를 금산분리로 묶어두고 있다”며 “은행이 GP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모험자본 시장 규모가 훨씬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리콘밸리식 모델을 예로 들며 “셀트리온이 5000만원을 투자하면 은행은 5억원을 투자할 수 있다”고 했다. 은행의 부족한 전문지식을 CVC로 보완해 혁신 생태계에 불을 지필 수 있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다.

이는 비단 진 회장 개인의 생각만은 아니다. 은행권 관계자들은 “이자장사에만 기댄다는 비판이 뼈아프지만 제도적 한계도 분명 존재한다”고 항변해 왔다. 리스크가 큰 혁신 기업에 섣불리 자금을 투입했다가 부실이 발생하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 속에서 안전한 담보대출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생산적 금융에 돈을 넣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은행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진 회장이 여러 규제 완화 카드 중 CVC 금산분리 완화를 제일 앞에 내세운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건전성 규제 완화는 위험가중자산(RWA) 비율 조정 등 복잡한 조율 과정이 필요하다. 반면 CVC 규제 완화는 은행이 혁신 기업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즉각적으로 열어주는 제도적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담보만 보던 은행에 ‘미래 성장성’이라는 새로운 눈 즉 ‘선구안’을 갖추게 할 가장 빠른 길인 셈이다.

이제 공은 정부로 넘어왔다. 금융당국은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을 입버릇처럼 강조해왔다. 건전성 규제 완화 등에 대한 뜻도 어느 정도는 내비쳤다. 하지만 정권 교체 이후 정부 조직 개편, 감독 체계 정비 등에 밀려 말뿐인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 앞에서 나온 은행권의 공개적인 반성과 제언은 그 무게가 남다르다. 이것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서는 안 된다. 담보 위주 대출에 치우친 관행에서 벗어나 선구안을 키우려는 은행의 노력, 그리고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함께 맞물릴 때 비로소 생산적 금융은 현실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