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이더랩 대표
탄소중립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됐다. ESG 경영은 선택이 아닌 기업 생존의 문제로 자리 잡았고, 탄소배출권 거래는 기업들이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문제는 기존 시스템의 불투명성과 비효율성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블록체인은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투명성, 추적성, 자동화’라는 장점을 앞세우며 탄소 시장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듯 이야기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정말 블록체인이 탄소배출권 시장의 게임 체인저일까, 아니면 ESG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또 다른 그린워싱 도구일 뿐일까?
블록체인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히는 것은 ‘투명성’이다. 거래 기록이 블록체인에 남아 위·변조가 불가능하다는 점은 분명 강력한 무기다. 그러나 탄소배출권 시장의 문제는 단순히 ‘기록 관리’에 있지 않다. 근본적인 문제는 탄소 감축 자체보다 거래와 상쇄에 치중하는 구조에 있다.
즉 블록체인이 아무리 거래 과정을 투명하게 만든다 해도 실제로 줄어든 탄소량이 미미하다면 그 투명성은 공허하다. 신뢰할 수 없는 데이터가 블록체인에 기록된다면 그것은 결국 ‘정교한 장부 속의 거짓말’에 불과하다.
Toucan Protocol을 통해 1만 톤의 탄소를 상쇄하고 비용을 절감했다는 사례, KlimaDAO 투자로 12%의 수익을 거뒀다는 사례, Verra가 블록체인을 연동했다는 소식 등 이런 이야기들은 언뜻 보면 혁신처럼 들린다. 하지만 대부분 기업의 비용 절감과 투자자의 수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블록체인을 활용해 배출권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겠지만, 해당 배출권이 실제 감축 활동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금융상품으로 전락했는지는 판별은 불가능하다.
결국 블록체인은 거래를 포장하는 역할만 할 뿐, 지속가능성을 담보하지 않는다. 결국 블록체인은 ESG 시대의 화려한 도구로 주목받고 있지만 절대 해답은 아니다. 탄소배출권 시장의 거래와 금융화에 의존하는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블록체인은 단지 ‘조금 더 멋스러운 장부’에 불과하다.
우리가 ESG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는 기술이 아니라 의지다. 기업들이 실제로 탄소 배출을 줄이고, 지속가능성을 위해 불편한 선택을 감수하려는 태도가 핵심이다. 블록체인은 그 과정에서 보조적 수단이 될 수는 있겠지만 본질을 대체하는 해법은 결코 될 수 없다.
블록체인은 ESG 경영을 위한 강력한 무기가 아니라, 그럴듯하게 보이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떤 목적에 쓰고 어떤 방향으로 활용하느냐다. ESG를 진심으로 실천할 의지가 없다면 블록체인은 또 다른 그린워싱 도구로 남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