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더랩 김경수 대표
홍콩이 가상자산 시장의 화려한 귀환을 알렸다. 중국의 규제 여파로 주춤했던 홍콩이 거래소 라이선스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고 세금 혜택까지 내놓으며 글로벌 거래소들을 다시 불러 모으게 됐다. 아시아 금융 허브의 명성을 되찾겠다는 의지다. 이 같은 활동으로 신규 가입자 증가율은 전년 대비 50%를 넘어섰다.
한국의 현실은 여전히 답답했다.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데, 제도는 여전히 과거 틀에 갇혀 있었다. 국내 가상자산 규제는 복잡하고 경직돼 글로벌 혁신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게 됐다. 그 사이 투자자들은 해외 거래 기회에서 소외되고, 스타트업들은 해외로 나가야만 성장할 수 있는 구조로 내몰리게 됐다.
이재명 정부가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스테이블코인 발행 허용, ICO 조건부 허용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변화의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실제 제도 개선 속도는 시장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게 됐다. 대통령 직속 디지털자산위원회 설치, 디지털자산기본법 발의 등 제도적 움직임도 있다. 하지만 ‘1거래소–1은행’ 원칙 유지 결정은 시장의 기대를 꺾게 됐다. 규제 완화의 방향은 말했지만 그 발걸음은 너무 느리다.
반면 홍콩은 과감하게 문을 열고 있었다. 싱가포르와의 허브 경쟁에서 속도를 높이며 글로벌 기업들을 빠르게 끌어들이게 됐다. 우리는 규제 완화를 논의하는 사이, 경쟁국들은 이미 시장을 선점해버렸다. 그 결과 한국의 가상자산 산업은 기술력과 인재가 있어도 제도의 벽에 가로막혀 기회를 잃게 됐다.
문제는 속도다.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특히 AI의 등장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과거 10년 걸리던 변화가 이제는 1~2년, 심지어 몇 달 만에 이뤄지고 있다. 이 속도에 발맞추지 못한다면 한국은 미래 산업의 주인공이 아니라 단순한 소비국으로 전락하게 된다. 지금 필요한 건 신중론이 아니라 기술과 시장의 속도에 맞춘 과감한 제도 개혁이다.
지금 필요한 건 명확하다.
첫째, 기술 변화에 대응할 중장기 규제 로드맵을 즉시 마련해야 한다. 둘째, 규제 샌드박스를 실질적으로 확대해 스타트업들이 시장에서 실험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홍콩·싱가포르 등 해외 가상자산 허브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 통로를 넓혀야 한다. 마지막으로 투자자 보호와 시장 혁신의 균형을 맞추는 탄력적 규제 프레임워크가 필요하다. 준비 없는 대응은 늦은 대응과 다를 바 없다.
지금이 바로, 태풍이 오기 전에 항로를 새로 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