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에 코로나 없다] ② 가게 세 곳 중 한 곳 폐업..권리금 없는 점포도 안 팔려

공실률, 작년 4분기 20%에서 올해 1분기 30%로 급증세
부동산 중개업자 “매물 하루 1~2개씩 쏟아져도 쌓이기만”
건물주-세입자, 대출금-임대료 부담 갈수록 커져 공멸 위기

박수진 기자 승인 2020.06.30 17:08 | 최종 수정 2020.07.01 15:06 의견 0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대로변·27가길·보광로59길 일대에 '임대'로 나온 가게들. (사진=박수진 기자)

[한국정경신문=박수진 기자]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이후 이태원은 지역 상권 자체의 몰락을 걱정해 할 정도로 위기에 빠졌다. 실제로 이태원 상가 중·대형 공실률(한국감정원)은 지난해 4분기 19.9%에서 올해 1분기 28.9%로 10%포인트나 치솟았다. 현재 상점 세 곳 중 한 곳은 폐업 상태라는 의미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는 30일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매물이 본격적으로 쏟아져 지금은 가게를 팔아달라는 주문이 하루에 1~2개씩 나온다”면서 “무권리금으로 내놓아도 찾는 이가 없다 보니 매물만 쌓이는 중”이라고 말했다. 

■ 줄줄이 '임시휴업' 다음달 영업 재개후 분위기 파악 나설듯

이 같은 폐업 분위기는 거리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이태원 메인 대로변인 이태원로(이태원역 1번·4번 출구 방향)의 경우 역으로부터 300m 구간에서만 8곳이 폐업했다. 이밖에 임시 휴업에 돌입한 카페, 점포정리 가게 등도 많았다.

식당이나 술집들이 주로 자리 잡고 있는 ▲세계음식거리(이태원로27가길) ▲베트남퀴논거리(보광로59길) 등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베트남퀴논거리 골목엔 지난 3월 폐업한 도자기 공예품점, 지난달 폐업한 샐러드 가게가 빈 점포로 남아있었다. 이밖에 카페 테라스제로, 스튜디오 하우스 등이 임대로 나와 있었다. 

'메인 스트리트'로 불리는 세계음식거리의 경우 좀 더 상황을 지켜보자는 분위기로 읽혔다. 술집과 클럽 등 유흥시설들로 주를 이루는 이 쪽 길은 임대로 나온 가게 보다 임시휴업인 가게가 많았기 때문이다. 

임시휴업이 많은 이유는 지난달 7일에 발생한 클럽 집단감염 사태로 서울시가 이틀 후인 9일부터 클럽·감성주점을 비롯한 유흥시설에 대해 ‘집합금지명령’을 내려서다. 현재 서울시는 이달 15일 오후 6시를 기해 룸살롱 등 유흥시설에 대한 ‘집합금지명령’ 조치를 ‘제한’으로 완화한 상태다. 다만 코로나19 확진자가 재발생할 경우 입원·치료비와 방역비 등에 대한 손해배상(구상권)도 청구될 수 있어 영업 재개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는 “다음달부터 영업을 재개할 것으로 알려진다”면서 “앞으로 일단 영업을 재개한 뒤후 분위기를 읽지 않겠느냐. 아직 임시휴업 중인만큼 문을 다시 열어 봐야 그 후 상황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개시 못하는 날 다반사”..종업원 무급휴직, 가족끼리 운영

이태원 상점의 폐업이 이처럼 속도가 붙는 데는 ▲수년 전부터 급격한 임대료 인상으로 상인들의 내몰림 ▲미군기지 이전 등으로 이미 침체가 시작된 가운데, 코로나19라는 대형 악재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달 7일 발생한 클럽 집단감염 사태로 ‘코로나 낙인’ 이미지가 찍히면서 이태원을 찾는 사람 수가 급격히 줄었다. 

지난달 24일 KT가 자사 기지국 정보를 이용해 통신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태원 클럽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지난달 7일 이후 15일까지 1주일간 이 지역 유동인구는 전년 동기 대비 77% 감소했다.

이처럼 이태원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역 주변 상점들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가 심각했던 지난 2월 말부터 4월 말까지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0~50%가량 떨어졌다면, 클럽발 집단감염 사태 이후엔 90%까지 하락한 것. 정부가 지난달부터 전국민을 대상으로 지원한 ‘긴급재난지원금’의 효과 역시 전혀 보지를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 상인들은 임대료 부담에 인건비라도 줄이고자 고용했던 종업원을 무급휴직으로 돌렸다. 

이화시장거리에서 포차를 운영하는 A씨는 “클럽 사건 이후 개시를 못하는 날이 다반사이다”면서 “월요일부터 목요일은 문을 닫고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3일만 영업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3일 영업일도 하루에 3만원, 5만원 판매가 전부이다 보니 일하는 사람을 전부 자르고 가족끼리 운영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퀴논길에서 중국만두 전문점을 운영 중인 B씨도 “하루에 손님 1명도 안 오는 날이 많은 등 개시를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면서 “인근 상점 대부분 종업원 없이 혼자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 높은 임대료, 폐업 가속화 이어져..건물주도 대출금 부담 '눈덩이'

코로나 사태는 이태원 상권에서 건물주와 세입자 모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트렸다는 분석이 많다.

우선 세입자 입장에서 보면 가게 운영 고정비(임대료+인건비+재료비+기타) 중 임대료가 차지하는 부분이 너무 크다. 현재 같은 불경기에는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대폭 낮춰 가게의 부담을 줄여줘야 하지만, 그렇지 않고 있다 보니 세입자가 손댈 수 있는 인건비·재료비 등을 줄인다는 것. 하지만 이 방법 역시 매출을 올리기엔 역부족이고 결국 가게를 내놓게 될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반면 건물주 입장에서는 해당 건물과 관련해 대출금을 끼고 있다 보니 임대료를 대폭 낮추는 게 쉽지 않다.

상인들은 “은행 대출도 한계가 있다”며 “건물주들도 현재 상황을 알기 때문에 임대료 독촉을 하지 않고 있지만 이 상황이 몇 달째 지속되면 지금처럼 기다려줄지 미지수다”라고 우려했다.

한 부동산 중개인은 “이태원이 다시 활성화되려면 가게들이 살아나는 방법밖에 없다”면서 “물론 안전하다는 이미지 쇄신도 중요하지만 건물주들이 50%가량 깎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 매물이 계속 나오는 이유는 가게가 안돼서 다 포기하고 나가는 경우, 세입자들이 내놓는 경우 등이다”며 “지금 매물을 찾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기존 세입자들이 나간다면 건물주들이 얻는 이득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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