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내년 상반기 홍콩H지수(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에서 대규모 원금 손실이 예상되면서 은행권이 긴장하고 있다. 해당 상품을 수조원 넘게 판매한 은행들은 불완전판매가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손실을 앞둔 투자자들은 카페를 개설하고 피해사례를 공유하는 등 집단 대응에 나서는 모습이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에서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홍콩 H지수 연계 ELS의 규모는 약 8조4100억원이다. 국민은행이 4조7726억원으로 가장 많고 이어 NH농협은행(1조4833억원), 신한은행(1조3766억원), 하나은행(7526억원), 우리은행(249억원) 순이다.
ELS는 기초자산 가격이 만기(통상 3년) 때까지 일정 수준을 유지하면 약속한 수익을 지급하는 파생 상품이다. 하지만 미리 정한 수준보다 가격이 내려가면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내년 상반기 만기가 예정된 홍콩 H지수 ELS의 경우 아직 손실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2021년 가입 당시 1만2000선이던 홍콩H지수는 현재 6000선 아래로 내려오면서 원금 손실 구간에 진입한 상태다. 내년 상반기까지 홍콩 H지수가 최소 7000선에서 1만200선까지 회복하지 않는다면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해당 상품의 손실이 확정되면 은행의 불완전판매 여부가 논란이 될 전망이다. ELS는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고위험 상품인데도 고금리의 예금 상품처럼 소개돼 판매됐다면 불완전판매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은 금융투자업자가 일반 투자자에게 투자를 권유할 때 ▲설명의무 ▲적합성 ▲적정성 ▲불공정영업행위 금지 ▲부당권유행위 금지 ▲허위·과장광고 금지 등 6가지 의무를 명시하고 있는데 이 중 하나라도 위반하면 불완전판매에 해당하게 된다.
은행들은 과거 DLF와 사모펀드 사태를 거치면서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규가 까다로워지면서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ELS를 팔 때 판매과정을 녹취하고 있고 투자성향 분석 과정까지 남아있다”며 “내부통제 측면에서도 점검하고 있기 때문에 불완전판매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사모펀드 사태 등으로 강화된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적용해 녹취도 남겼고 숙려기간을 부여해 신중하게 판매했던 만큼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낮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홍콩H지수 ELS 투자자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30대 투자자 A씨는 “원금 손실나는 거에요 라는 질문에 은행 직원이 원금비보장이라고 쓰여있지만 형식적인 것이라 신경 안 써도 된다, 원금보장 안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며 “투자성향분석 점수가 낮아 가입조건에 충족이 안되니 다시 체크하라는 지시도 받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50대 투자자 B씨는 “수입이 없는 주부라서 투자성향분석에서 안정형으로 나와 초고위험인 ELS투자상품 가입이 어렵다고 다시 투자성향분석을 공격형으로 나오게 해야된다는 은행 직원 말에 따라 투자성향분석을 다시 진행했다”며 “홍콩H지수의 위험성에 대해선 전혀 얘기해 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홍콩H지수 ELS 가입자들은 공통적으로 은행 창구 직원들이 판매 과정에서 손실 가능성을 과소평가해 지나치게 낙관적 정보를 제공했고 상품 가입을 위해 고객의 투자성향 수정을 요구했다고 지적한다.
또 기존 ESL 가입자에게는 조기상환 시점에 맞춰 연락해 재가입을 권유했다는 사례도 흔하다.
투자자 C씨는 “조기상환이 되면 당연히 재가입 권유 전화가 왔고 앵무새처럼 설명서를 낭독하고는 형식적인 절차와 함께 재가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홍콩H지수 ELS 투자자들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피해자 모임 카페를 개설하고 금융감독원 민원 제기 방법, 불완전판매 사례 등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조만간 은행의 불완전판매를 규탄하는 집회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당국도 지난 20일부터 홍콩H지수 ELS를 판매한 은행·증권사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 중이다. 조사 단계에서 부터 불완전 판매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관련 자료와 정황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ELS 판매 과정에서 불완전판매가 확인되면 과거 DLF와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판매사인 은행이 투자자 손실 보상에 나서야 할 수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TF를 구성해서 현재 시장 상황과 가입 상품 정보 안내를 강화하는 등 고객 관리를 진행 중”이라며 “아직 원금 손실이 발생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불완전판매를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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