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불투명 시트지’로 위협받는 편의점, ‘안전지대’로 거듭나길

김제영 기자 승인 2023.03.31 14:38 | 최종 수정 2023.04.05 13:58 의견 0
생활경제부 김제영 기자

[한국정경신문=김제영 기자] 늦은 밤 귀갓길, 어두컴컴한 골목을 걷다보면 밤길을 훤히 밝히는 편의점이 반갑다. 필요 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편의점 업계는 여성·아이를 위한 안심 지킴이 서비스 등을 운영하고 있다. 여성의 늦은 귀가를 돕고 실종 혹은 학대 받는 아이를 보호하는 일종의 안전센터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범죄 예방을 자처했던 편의점이 오히려 범죄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이는 편의점의 유리창이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가려지면서부터다. 편의점은 지난 2021년 7월부터 통유리에 반투명 시트지를 의무적으로 부착하기 시작했다. 편의점 내부의 담배 매대와 관련 광고를 외부로 노출하지 않기 위해서다.

보건복지부는 편의점 외부에서 담배 광고 노출을 막고 청년층 및 청소년의 흡연율을 낮추겠다는 목표로, 이 같은 규정을 정해 단속하고 있다. 담배 광고가 외부로 노출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만약 불투명 시트지 부착을 원하지 않는다면, 담배 광고 및 판매를 하지 않으면 된다. 담배는 통상 편의점 매출의 약 30~40%를 차지한다.

규제 시행 후 1년 반이 넘도록 실효성에 대한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질병관리청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의 궐련 담배 흡연율은 2020년 4.5%에서 2021년 4.4%로 소폭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액상형·궐련형 전자담배 사용률은 각각 1.9%에서 2.1%, 1.1%에서 1.4%로 증가했다. 특히 성별로 보면 청소년 여학생의 흡연율은 2.7%에서 2.9%로 증가했다.

동대문구에 위치한 한 편의점은 시트지를 부착하지 않고 담배 판매도 하지 않는다. [사진=김제영 기자]

지난해 통계는 발표되지 않았으나 작년 흡연율이 감소했다고 해서 해당 정책의 효과로 보기는 어렵다. 업계에서는 담배 광고를 가린다고 흡연 욕구가 사라질 것이라는 발상에 대해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일부 점주들은 편의점의 안정성을 우려해 담배 판매를 포기하고 유리창에 불투명 시트지를 부착하지 않기도 한다.

실제로 편의점의 안정성은 갈수록 위협받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편의점에서 발생한 범죄 건수는 ▲2019년 1만4355건 ▲2020년 1만4697건 ▲2021년 1만5489건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불투명한 시트지가 편의점 내외부의 시선을 차단해 근무자가 범죄 피해를 입더라도 외부에서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빈번하다.

게다가 지난 2월 인천 계양구의 한 편의점에서 점주가 강도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해 편의점 시트지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는 성명서를 내고 내외부로의 시선을 감소시키는 불투명 시트지가 국토교통부의 ‘범죄예방 건축 기준 고시’와 배치된다며 즉각 제거를 강조했다.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는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하는 편의점은 매년 증가하는 강력 범죄에 노출돼 있다. 특히 인적이 드문 야간 시간 보통 1인 근무 체제로 돌아가는 대다수의 점포는 범죄의 표적”이라며 “청소년 흡연율을 낮추기 위함이라면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는 정책을 발굴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 건강을 위한다는 취지는 좋으나, 담배 광고 노출을 막는 식으로 흡연을 줄일 수 있으리라는 정책은 동의하기 어렵다. 다행인 건 최근 이 같은 의견을 감지한 정부와 국회가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는 점이다. 국회와 정부는 해당 문제에 대해 대책을 의논하고 규제심판 안건으로 올리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편의점이 더 이상 범죄의 사각지대가 아닌 안전지대로, 다시금 거듭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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