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기로에 놓인 우윳값..밀크 인플레 부담에도 원유 가격제 조정 ‘불투명’

낙농가와 유업체 '갈등'에 하반기 '밀크인플레이션' 현실화 우려도

김제영 기자 승인 2022.06.28 16:18 의견 0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들이 우유를 구매하고 있다. [자료=연합뉴스]

[한국정경신문=김제영 기자] 올해 협상 테이블에 오른 우유 가격제 논의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원유가격 조정 시한이 지나도록 낙농가와 유가공 업계 간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은 까닭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원유 가격 협상을 진행할 원유가격조정협상위원회는 아직 구성되지 않았다. 위원회는 낙농진흥회의 원유생산 및 공급규정상 통계청이 농축산물 생산비 조사를 발표하면 한 달 내 꾸려 협상을 마쳐야 한다. 통계청은 지난달 24일 우유 생산비를 발표했지만 낙농가와 유업체는 아직 위원회도 구성하지 못한 상태다.

양측은 ‘원유가격결정제’를 두고 팽팽한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현행 원유가격연동제는 지난 2013년부터 매년 5월 말 발표되는 원유 생산비를 근거로 가격 협상을 통해 원유 가격을 조정하는 제도다. 이는 낙농가 생산 기반 보호를 위해 도입됐다. 다만 생산비가 반영되는 만큼 수요와 공급의 시장원리가 작용하지 않자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국내 우윳값은 원유가격연동제에 따라 매년 오르고 있다. 우유 생산비 지표와 물가 변동률 등을 고려해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물가가 오르면 함께 오르는 구조다. 반면 흰 우유 소비량은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민 1인당 흰 우유 소비량은 2001년 36.8kg에서 2020년 31.8kg로 12.9% 감소했다. 저출산·학령인구 감소 등에 따른 영향이다.

문제는 우유 가격이 전반적인 식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밀크인플레이션’이다. 우유는 치즈·버터·아이스크림 같은 유제품부터 빵·커피 등 각종 식품에서 사용되는 원료다. 우유 가격이 오르면 전반적인 식품 가격도 따라 오르게 된다. 최근 가파른 물가 상승세가 우유 가격 인상을 부추기자 원유 가격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논의가 화두에 올랐다.

업계는 우유 가격 현실화를 위해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용도별 차등가격제는 마시는 우유인 음용유와 치즈·버터 등 가공유로 용도를 나눠 원유 가격을 차등 산정하자는 취지다. 음용유는 현행 수준을 유지하되 가공유는 더 저렴한 가격 제공하고 농가 소득을 보호하기 위해 총 구매량을 확대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실제로 마시는 우유 소비량은 줄고 있지만 치즈·버터·아이스크림 등 유제품 소비는 늘고 있다. 국민 1인당 유제품 소비량은 2001년 63.9kg에서 2020년 83.9kg으로 큰 폭 증가했다. 다만 국내 유제품 생산 및 소비는 비싼 원유 가격에 의해 위축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입 유제품과 가격 경쟁력도 떨어지는 데다 같은 기간 원유 자급률도 77.3%에서 48.1%로 축소했다.

반면 낙농가는 기존 제도를 유지하자는 입장이다. 특히 올해 사료 가격이 인상하는데 가공유용 원유 가격을 내리면 사육기반이 붕괴되고 농가가 위기에 내몰릴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현행 원윳값을 유지한다면 사육을 포기하는 농가가 증가해 하반기 원유 부족 사태가 빚어질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현상이 지연되자 낙농가 측은 납유를 거부하겠다는 경고도 내놓았다.

원유 가격제에 대한 논의로 가격 협상이 지연되는 가운데 올해 새 원유 가격에 대한 시각 차도 뚜렷하다. 유업계는 현행 원윳값을 유지한다고 보는 반면 낙농가는 생산비와 연동해 원유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측의 갈등이 길어질 경우 납유 거부 사태로 ‘우유 대란’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식품업계는 밀크인플레이션을 우려하고 있다. 원유 가격이 오르면 유제품을 포함한 식품 전반에서 가격 인상 압박이 심해진다. 올해는 특히 밀가루·식용유·설탕 등 원재료 가격이 오르고 있어 원가 부담이 더욱 심화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중재 역할을 강조하지만 정부는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우유 가격 안정을 위해 용도별 차등가격제에 긍정적인 입장이지만 양측 협상에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정부가 낙농가와 유업체 간의 가격 협상에 개입할 수는 없다”며 “현재 박범수 차관보가 생산자 단체 측과 지속해서 만나 협의하는 등 정부도 양측의 중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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