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병수 역으로 열연한 배우 설경구. (사진=(주)쇼박스)
[한국정경신문=장영준 기자] 알츠하이머 환자의 가장 두드러진 증상 중 하나는 기억장애다. 소지품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친한 지인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기도 한다. 심한 경우 자신의 이름은 물론, 가족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한다. 내가 어제 무엇을 했고, 오늘 뭘 해야하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이란 단순히 머릿속에 저장된 정보가 아니라 내가 나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인간으로서의 정의를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이 알츠하이머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 '연쇄살인자'라는 키워드를 추가했다. 기억을 잃은 연쇄살인범이라니. 주인공 병수(설경구)는 과거 연쇄살인범이라는 기억을 묻어두고 하나뿐인 딸 은희(김설현)와 함께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병수는 자꾸만 길을 잃고 방황하기도 했지만, 단 하나 살인에 대한 기억만은 잊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알츠하이머가 잊고 싶었던 연쇄살인의 기억을 자꾸만 떠올리게 만들었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속 태주 역의 김남길. (사진=(주)쇼박스)
병수는 어느날 우연히 접촉사고로 태주(김남길)라는 남자를 만난다.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는 그에게서 병수는 자신과 같은 눈빛을 발견한다. 최근 연이어 발생한 20대 여성을 상대로 한 연쇄 살인 사건이 오버랩 되면서 병수는 그가 살인자임을 직감한다. 병수는 경찰에 그를 살인자라 신고하지만, 태주의 직업은 바로 경찰이었고 아무도 병수를 믿지 않는다.
태주에 대한 기억의 끊을 놓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던 병수는 그가 자꾸만 딸 은희의 곁을 맴돌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태주를 잡기 위해 병수는 계속해서 기록하고 쫓지만 기억장애 증상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그러면서 자꾸만 과거의 살인 습관들이 살아나고 망상과 현실을 혼동하기 시작한다. 과연 병수는 태주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까. 은희를 그 놈으로부터 지킬 수 있을까.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은희 역을 맡은 배우 김설현. (사진=(주)쇼박스)
병수의 기억을 따라가는 영화는 마치 그의 기억에라도 초대한 듯 모두를 혼란하게 만든다. 그래서 마지막을 보기 전까지 무엇이 망상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단언할 수 없다. '살인자의 기억법'을 관람할 계획이 있는 관객이라면 영화를 보는 내내 단 한순간도 눈을 떼지 말 것을 당부드린다. 어쩌면 당신도 어느 순간 기억을 잃고 현실과 망상을 구분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지만 원작을 보든 보지 않았든 상관없다. 영화는 충분히 영화적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일부 소설과 다르게 각색한 부분도 눈에 띈다. 그러니 혹시라도 이런 부분 때문에 관람을 망설이는 이가 있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몸무게 변신의 귀재인 배우 설경구의 연기 변신도 눈여겨 볼만 하다. 김남길의 음침한 미소도 관전 포인트. 설현은 여전히 예쁘다. 오는 9월 7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18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