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병희의 그림이 있는 풍경] 미류나무 애가(哀歌)

반병희 칼럼니스트 승인 2022.07.19 12:00 | 최종 수정 2022.07.20 08:29 의견 1

[반병희의 그림이 있는 풍경] 미류나무 애가(哀歌)

반포대교 부근 잠원한강시민공원의 미루나무 (사진=반병희)


미루나무는 목가적이어야 한다. 이국적 분위기가 나면 더욱 좋다. 충북 음성의 미루나무 시골길이 영화속에 나오는 프로방스나 이탈리아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억지로 감성을 끌어낼 필요는 없다. 기억이라는 고통이 친구처럼 다정할 때도 많으니까. 거친 폭풍우와 삭풍을 묵묵히 받아내야 와서. 물론 고호의 허락을 받을 필요까지는 없다. 나무는 늘 그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서 있기 때문이다. 바람 구름 비, 그리고 새와 사람이 왔다 가며 나름의 전설을 남겨 놓고 간다. 이 또한 미루나무에게는 무심한 일이다. 미루나무가 ‘미루’가 아닌 ‘미류’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미류나무.

한강변을 걷거나 뛴다.

잠원동으로 이사오면서 시작했으니 제법 됐다. 연수나 유학, 해외 근무 등 몇 차례 외국에 나가 있던 기간을 제외하면 반복되는 일상이다.

눈썰미가 썩 좋지 않음에도 계절에 따른 물 비린내의 미묘한 차이, 강 물색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정도가 됐으니 반쯤은 한강토박인 셈이다. 수양버들이나 전봇대, 가로등의 위치를 눈감고 알아 맞추기도 하고.

15,6년 전이다.

그날 아침도 산책 삼아 강변을 뛰었다.

시작점인 반포대교를 출발한 지 얼마 안돼 낯선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곁가지 없이 줄기만 곧게 뻗은 어린 미루나무들이 강변 산책로를 따라 심어져 있었다. 100m는 족히 넘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없던, 낯선 풍경이었다. 새로 서울시장에 취임한 사람이 한강시민공원에 주말농장을 조성한다, 문화마당을 건설한다, 생태계를 복원한다 등등 요란하게 일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지만 설마 한강변 가로수에까지 손을 댈 줄은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

뭔가 개운치 않은, 그렇다고 심술은 아니고, 분노나 실망은 더더욱 아닌, 칡넝쿨 처럼 뒤틀리고 복잡하게 배배 꼬였으나 한마디로는 설명할 수 없는 유쾌하지 않은 감정이 기억너머 저 깊은 어디선가 부터 슬슬 기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사람도 아닌 나

무에게서 이런 감정을 가져 본 것은 실로 오랜만 이었다.

미루나무 가로수라니, 많고 많은 나무 중에 하필이면 미루나무인가?

아무리 강변이라지만 그래도 서울 도심인데 미루나무가 가당키나 한가?

뛰던 걸음을 멈추고 “도대체 어떤 정신나간 놈들이 이런 짓을 했지? 또 누구 장사시켜 주려고 서울시가 뻘짓을 했네.”라고 큰 소리로 짜증을 냈다.

아내는 창피하다는 듯 주위를 돌아보며 “아니 미루나무가 어때서? 크면 좋기만 할 텐데. 사이프러스 같기도 하고.”라고 하며 상황을 바꾸려 애썼다. 이어 작은 소리로 “내일부터는 당신 혼자 나오세요. 남사스러워 죽겠네.”라고 핀잔을 줬다.

무의식적이었다. 그 날 이후로 미루나무가 심어진 구간을 가능한 피했다. 등하교때 매일이면 매일산모퉁이에 있던 신당과 곳집을 피해 에둘러 갔던 것처럼.

딱히 미루나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우고 싶었던, 지워야 했던, 아니 지워지기를 바랬던 흔적이되살아나는 게 싫었다. 예고없이 찾아 온 반갑지 않은 손님을 만났을 때의 기분처럼.

‘미류나무’라 했다.

이태리포푸라 또는 미루나무라고도 했다. 하지만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 달라지는 이파리의 색갈, 나무 내음은 내게 ‘미류’라고 부르기를 요구했고 나는 약속을 했다. 아침 햇살을 맞은 보드라운 연두색, 한낮의 하늘 거리는 감청색, 비맞은 후의 풋풋한 나무냄새는 미루가 아닌 미류이어야 했다. 그 것은 지켜내야 할 최소한의 나의 정서(情緖)였고 토템이었다.

군더더기 없이 물안개에 자취를 감추는 가을의 미루나무도 일품이지만 성장(盛裝)을 한 여름의 미루나무는 교만함으로 치고 들어 왔다.

흰 조각구름이나 뭉게구름이 나무 높이 걸려 있어야 했고, 매미가 가지 꼭대기에서 울어야 여름 미루나무는 비로소 완성됐다.

날씬하게 하늘로 쭉쭉 치솟아 오르는 모습은 수직상승의 운명을 고통스러워 했고, 바람에 따라떼지어 일렁이는 이파리들은 여름 병정들이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집시 서정을 느낀다고 했다.

하늘로 올라가는 미루나무/휘청이는 가녀린 너의 몸

바람에 떨고 있는 이파리들/네가 보냈던 엽서 한장

그때는 왜 들리지 않았을까/그 속에 숨어있던 불안한 구조신호

손바닥처럼 뒤집혀/떨고 있는 이파리들

너의 길고 흰 손가락/ 빗방울이 떨어질 때

수면에 번지는 동그라미 처럼/조용히 울려 퍼지던 기타소리

나는 물에 빠져 있었지/아니, 허공에 빠져 있었던가

미루나무를 볼 때 마다/들려 오는 기타소리

끝없이 논이 이어지고 이어지는 들판 한가운데 미루나무가 뚝뚝 떨어져 있었다. 논둑과 수로는 미루나누로 인해 파격이 됐고 들판에 생명이 부여됐다.

바람과 비, 천둥과 번개를 오로지 홑몸으로 받아내는 당당함은 우주를 가르쳐 주는 장엄함이었고, 폭우 속에 바다를 지키는 등대의 비장함이었다.

무더위가 내리 붓는 정오 무렵이면 하늘에서 땅으로 차거운 물줄기를 이어주는 구원이기도 했다.

실제 이리저리 허공을 헤매다 더위에 지친 들새들은 날개를 접고 잠시 가지에 앉아 쉬어 갔고, 아버지는 그늘 아래 고단함을 잠시 내려 놓고 단잠을 잤다. 아버지의 시름은 코고는 소리에 실려 바람 속으로 흩어졌다. 이따금 매미소리만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들판의 고요를 채워 나갔다.

그리고는 다시 적막.

들판은 미루나무만을 남긴 채 고요 속으로 빠져 들어 갔다. 논두렁을 기던 작은 벌레 조차도.

60이 훨씬 넘은 늙은 아버지의 얼굴은 짙은 갈색이었다. 여기저기 골이 깊게 패였다. 다듬지 않은 흰눈썹은 제멋대로 자라 이마 앞쪽까지 뻗어 나 있었다. 흰 잠방이 저고리는 반쯤 풀어져 숨을 들이고 낼 때마다 쇄골을 드러냈다. 여의었다. 잠결에 내뱉는 한숨은 미루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가 하늘 속으로 흩어졌다. 아버지는 그렇게 미루나무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 갔다. 다시 모든 게 멈춘 정오의 고요.

나는 곤하게 잠든 아버지가 깰까 봐 어머니 심부름으로 갖고 나온 막걸리주전자를 조용히 옆에 내려 놓았다. 늙은 아버지의 노동이, 근심이 잠시나마 멈추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것은 기도이자 기원이었다. 한참을 바라보다 거의 매번 습관처럼 조용히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멀었다. 가끔 뒤를 돌아보면 아버지는 멀리 미루나무 그늘 아래 그대로 였다. 왠지 까닭모를 안타까움과 서글픔이 일었다. 콧 잔등을 타고 내리는 짭짭하면서도 찝찝한 액체에 눈앞이 뿌여지곤 했다. 저학년 늦둥이 아들은 목이 맸다. 스스로 겸연쩍어진 듯 걸음을 멈추고 할 일 없이 길가의 돌멩이를 툭툭 걷어 찼다. 들판의 여름은 아버지의 미루나무와 함게 그렇게 깊어 갔다.

집앞 텃밭가에도 미루나무가 서너 그루 있었다.

미친 듯이 매미가 울어 댔다. 마루에 배를 깔고 방학숙제를 했다. 책도 읽었다. 그것도 지쳐 무료하면 아무 생각없이, 요즘 말로 멍때리며 한동안 미루나무를 바라봤다. 그러다 동시(童詩)인지 시(詩)인지를 과제로 써냈다가 군 교육청장상도 받았다. 내용은 대충 이러했던 것 같다.

매미가 굳이 미루나무를 골라 의지하는 것은 사람들이나 짐승들의 접근을 피하기 위함이 아닐까? 잔가지 없이 하늘로 길게 쭉 뻗어 오른 것이 그 누구의 접근도 허락치 않기에.

수천 수만 개의 이파리가 군락을 이루며 붙어있는 것은 하늘로 가는 매미의 영혼길을 환송하는 것 아닐까? 꽃상여의 수술 장식처럼. 10년을 기다려 10일을 산 그대의 영혼을 보내는 숭고한 의식(儀式).

왜 사람들은 여름날에 왔다가 가을에는 사라지는 것일까? 시간을 거부하는 것은 그 다음에 봄이 온다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닐까? 온몸을 던져 홀로 하늘을 떠받치다 모든 것을 소진했기 때문일 지도. 이번 생에는 이 것으로 마감.

도회지로 나가 중ㆍ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입학에 이어 군대를 다녀오는 동안 미루나무는 기억속에서 잊혀져 갔다.

혹자에게는 목가적이고 로맨틱했지만 나에게는 결코 그럴 수 없었던 미루나무가 느닷없이 무겁게 다시 다가온 것은 학부 4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군에서 제대한지 얼마 안돼 복학한 나는 형편이 여의치 않았고, 수원 누나 집에 얹혀 지내며 서울의 학교까지 통학을 했다. 80이 넘은 아버지가 농사를 내려 놓은 터라 방학이 됐어도 누나 집에 계속 머물며 인근 성균관대학교 율전 캠퍼스(그때는 그렇게 불렀다)의 도서관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죽쳤다.

대학원은 진학하고 싶은데 돈이 없고, 취업을 하려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열람실자리에는 앉았으나 갈팡질팡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일상이었다. 미래에 대한 자신도 없고 희망도 없고. 게다가 몇몇 친구들이 입도선매 형식으로 외국계 기업이나 종금사나 투자금융사 등에 취업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면 비참하기 조차 했다.

그러다 안되겠다 싶어 영어듣기나 공부해두자고 생각했고, ‘야메’ 학생증으로 도서관에서 멀지 않은 강의동의 외국어 듣기 학습실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이름은 ‘외국어랩실’이라고 돼 있었으나 일반 강의실을 개조한, 외국어 듣기 자습실 수준의 자율적 공부 공간이었다. 관리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학생증을 보여주면 희망 외국어가 녹음된 카세트테이프를 넘겨 받아 지정된 좌석에서 헤드폰을 끼고 듣기 훈련을 하면 됐다. 이과대와 공과대 중심이 캠퍼스여서인지 카세트는 깨끗했고 이용하는 학생도 나를 포함해 1,2명에 불과했다. 걸릴까봐 늘 조마조마했다. 수입이 생기면 제대로 된 영어학원을 다니기로 하고.

재미를 붙여 물이 오르는 것을 느낄 무렵인 어느 날 오후 입실 확인 담당 아르바이트생이 갑자기 내 자리로 와 학생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학생증을 유심히 살펴 본 아라바이트 여학생은 ‘사진이 다르네요? 다른 분 학생증…’라며 퇴실을 요구했다.

이 학교에 다니는 친구의 친구 학생증을 빌렸다가 들통이 났던 것이다. 민망함과 수치, 이른바 ‘쪽팔림’에 아뭇 소리 못하고 짐을 챙겨 도망치듯 랩실을 빠져 나왔다.

크게 한숨을 쉬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날 따라 유난히 하늘이 깨긋했다. 파랬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경지의 여름날 하늘,바로 그 하늘이었다. 그 하늘을 배경으로 뭉게구름이 여기저기서 피어 났다. 뭔가 많이 보던 기시감에 눈길을 구름아래도 내렸고, 마치 계획된 것 처럼 미루나무가 캠퍼스 군데군데에 심어져 있었다. 8월 뜨거운 여름날 오후, 뭉게구름, 파란 하늘, 매미소리, 모든 게 완벽했다. 웃었다. 비실비실 웃음이 나왔다. 방금 전의 민망스럽던 쪽팔림이 완벽한 여름날의 오후를 만나면서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세월이 흐른 지금도 민망하거나 겸연쩍은 상황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이 대목에서 아직도 이해 안되는 것 하나. 대학 캠퍼스에 왜 미루나무를 정원수로 심어 놓았는지? 큰 길이나 들판이면 뭔가 서사가 가능하지만, 대학 교정의 미루나무는 생뚱맞지 않은가?

여하튼 그날 부로 대학원과 취업을 동시에 준비하기로 했고, 두 세달 미친 듯이 벼락 공부에 들어 갔다. 다행스럽게도 기대했던 결과를 무난하게 얻으며 일상사에 매몰돼 갔다. 그 해 여름의 외국어랩실과 미루나무, 하늘, 뭉게구름 또한 다시 떠 올릴 일 없이 잊혀져 갔다.

그러니 느닷없이 맞닥뜨린, 마음의 준비 없이 부딪친 반포대교의 미루나무를 무방비 상태에서 때려 뉘여야 했으니 여간 짜증나고 화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 미루나무 길을 요즘은 일부러 찾는다. 몇 년을 떠나 있다가 올 봄 본래의 잠원동 집으로 복귀하면서 부터다. 과거와는 달리 미루나무 가로수길을 따라 반포대교 부근에서 조깅을 시작한다.

15,6년 된 놈들이 몇m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란 게 여간 믿음직스러운게 아니다. 당당하게 하늘로 치솟은 가운데 줄기를 기둥 삼아 왕국을 이룬 무성한 잎들이 수시로 군무를 춘다. 보기도 좋고 주변 풍경까지 돋보이게 하니 신통하다.

잠원한강시민공원의 미루나무 가로수(사진=반병희)


결코 편하게 대할 수 없던 복잡하고 찜찜한 대상으로서의 미루나무 가로수길이 감정이입 대신, 편하게 다가왔다. 신기했다. 짜증낼 일도 없다. 오히려 한강변을 장식하고 있는 게 사이프러스보다 경쾌하고 멋있어 보인다.

몇 번이고 생각해봤지만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다. 억지로 구한다면 ‘시간’인 듯 하다. 시간이 미루나무를 나에게로 다시 가져 왔고, 나는 미루나무를 온전히 나무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셈이다. 미루나무에 의인화 했던 어리고 젊은 날의 흔적을 시간이라는 놈이 나서서 하나 하나 지워 나간 듯 하다. 나도 모르게. 평생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던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 가난했던 젊은 날의 나에 대한 연민을 시간은 산 너머로 노을과 함께 보냈다.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내가 미루나무를 받아들인 게 아니라 미루나무가 나를, 나의 짐을 내려 놓게 했다는 것이 맞을 게다. 하늘도, 구름도, 바람도 그대로 이지만 그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도 나이고, 그것을 덤덤히 바라보게 된 것도 나이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 퇴근하는 대로 한강변을 다시 찾으려 한다. 때마침 장마 끝이라 서울의 하늘이 파랗다. 조각구름도 뭉게구름도. 오늘은 뛰는 대신 걸어야겠다. 한그루 한그루를 바라보며.

‘미류나무여, 나의 젊은 시절이여, 이제는 안녕!’

<필자 소개>

-전 동아일보 모스크바특파원, 산업부장, 부국장, 미래전략연구소장

-전 채널A 경영전략본부장, 글로벌사업센터장

-전 에너지경제신문사장, 아주경제신문부문대표

-전 (주)메디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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