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조 단위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던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사태 관련 과징금이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과징금 산정 관련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을 개정하며 ‘징벌’보다는 ‘형평성’에 초점을 맞추면서다.

지난 2024년 3월 29일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신관 앞에서 홍콩지수ELS피해자모임 회원들이 '대국민 금융사기 규탄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한국정경신문 DB)

22일 금융위원회가 금소법에 따른 과징금 부과 세부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시행령 및 감독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당초 과징금 기준이 바뀌면 홍콩 ELS 사태 과징금이 최대 8조원에 달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 놓고 보니 과징금이 대폭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는 최근의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기조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지난달 28일 은행장들과 첫 상견례 자리에서 “더 이상 ELS 불완전판매 등과 같은 대규모 소비자 권익침해 사례는 없어야 한다”며 “대규모 소비자 피해를 유발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든든한 파수꾼’으로서 엄정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과징금 산정 시 기준을 ‘판매액(거래금액)’으로 명시하고 위법성 정도에 따른 가중·감경사유를 체계화한 것이다. 기존에는 ‘수입 등’이 기준이었으나 이제는 상품 유형별 거래금액을 기준으로 과징금이 산정된다.

KB국민은행 등 주요 은행들은 수조원 단위의 ELS 판매 규모를 기록했다. 단순 계산으로는 과징금 규모가 조단위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기존 규정 해석에 따라 판매수수료만 기준으로 하면 900억원 수준이었다. 판매금액 기준 도입으로 기본 과징금 규모가 급격히 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위법성에 비례하는 가중·감경 사유가 마련되면서 홍콩 ELS 과징금이 대폭 삭감될 가능성이 커졌다. 개정안에 따르면 고객 배상, 소비자보호 강화 실태평가, 내부통제제도 충실 이행 등 다양한 감경 사유를 동시에 충족하면 최대 75%까지 과징금을 감경 받을 수 있다.

특히 ELS 판매 은행들이 대부분 자율배상을 완료한 점이 주요 감경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6월 말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자율배상 동의율은 평균 96.1%다. 평균 배상비율도 31.3% 수준이다.

은행들의 자발적인 자율배상 노력이 인정되면 과징금의 최대 50% 감경이 이뤄진다. 여기에 소비자 보호 실태평가 결과와 내부통제기준 이행 여부에 따라 최대 75%까지 감면 받을 수 있다.

금융당국은 이번 개정안을 마련하면서 과도한 징벌보다는 실질적인 피해 구제와 개선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할 경우 금융사의 경영 활동이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금융시장 안정과 소비자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대신 위반 행위로 얻은 부당이득이 기본 과징금보다 크면 그 이상을 환수할 수 있도록 부과기준율을 세분화했다.

금융위는 “위반행위자의 위법성 정도 등에 상응하는 과징금을 부과해 제재의 형평성을 확보했다”며 “과징금 부과 기준에 관한 예측 가능성도 크게 제고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안건이 보고된 제14차 금융위원회에서도 위원들은 금융사에 대해 제재보다는 불합리한 부분 개선에 초점을 맞춘 의견들을 내놨다.

한 위원은 “세계적으로 리스크의 이전과 출연자금의 이전 같은 것들을 가지고 여러가지 분류를 통해 불합리한 점을 없애는 경향이 있다”며 “금융상품의 특색과 금융기관이 지는 위험, 금융소비자가 지는 위험을 양정해서 구체적인 양정 기준을 잘 적용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