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 '프라이드' 손지윤, 관객이란 실비아를 만나다

이슬기 기자 승인 2019.07.28 19:15 | 최종 수정 2021.08.02 08:52 의견 2
배우 손지윤 (자료=이슬기 기자)

[한국정경신문=이슬기 기자] 1인 2역은 쉽지 않은 도전이다. 특히 두 시대가 반복적으로 교차되는 연극 위에서. 배우는 시간에 쫓겨 감정의 흐름을 잡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배우 손지윤은 "하다 보니 즐기면서 하게 되더라"며 웃었다. 그 바탕에는 "실비아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 자체가 참 즐거운 일"이라는 이유가 자리한다.

손지윤은 연극 '프라이드'에서 실비아 역을 맡아 연기 중이다. 18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과 만 17세 이상 관람가라는 연령 제한에도 불구하고 초연과 재연, 삼연까지 큰 사랑을 받은 연극이다. 1958년과 현재를 넘나들며 두 시대를 살아가는 필립, 올리버, 실비아를 통해 성(性)소수자들로 대변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극중 실비아는 방황하는 필립과 올리버를 누구보다 똑바로 바라보는 아는 캐릭터다. 과거의 실비아는 남편 필립의 행복을 위해 떠난다. 현재의 실비아는 필립과 올리버를 응원하면서 무엇보다 먼저 제 행복을 만끽하는 자유로움을 가졌다. 기본적으로 타인의 아픔과 사랑에 공감할 줄 알고 이해의 손길을 건네는 인물인 것. 때문에 관객들은 매 시즌 실비아에게 열렬한 지지를 표현해왔다.

물론 실비아가 애틋한 건 배우 손지윤도 마찬가지다. 관객으로서 본 공연에서도 "실비아에 대한 여운이 길었다"는 것이다. 대본을 들고 본격적인 연습에 돌입했을 때도 실비아라는 인물은 그의 가슴에 큰 울림을 주었다.

연극 '프라이드' 공연 사진 (자료=연극열전)

두 시대의 실비아는 같지만 또 다르다. 때문에 실비아에 대한 접근이 쉽지만은 않았다. 특히 과거의 실비아는 "'내가 과연 이 사람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말 하나하나 허투루 내뱉고 싶지 않았다. 이 사람이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기뻐하고 또 홀로 힘들어했을 시간. 그 시간을 지나 용기를 전하는 그 순간. 그 무게를 내가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손지윤을 감쌌다.

하지만 어려운 숙제는 그 이상의 희열로 이어졌다. 캐릭터에 대한 진심이 있기에 자신만의 실비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행복했다. 그리고 무대에 오르고 있는 지금. 손지윤은 "내가 생각보다 실비아는 더 외롭고 안쓰럽다. 또 강하고 현명하다는 걸 느낀다"며 "모두의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행동하는 것. 그런 용기와 강인함을 가졌기에 실비아의 미래가 희망차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현대의 실비아에 대해서는 "필립과 올리버 사이에 굉장히 영향력 있는 존재"라고 입을 열었다. 실비아가 가진 포용력은 과거의 인물과 같지만 또 다른 에너지가 함께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실비아에게는 삶의 행복을 정확히 인지하고 떠날 줄도 아는 용기가 있다. 용기 있는 자만이 갖는 프라이드. 실비아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대사가 아닐까"라고 말했다.

또한 손지윤은 무대에서 직접 관객을 만남으로써 실비아를 채울 수 있었다. 말로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자신만이 느끼는 실비아의 외로운 지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무대에 진짜 오르고 나서 관객이 모두 실비아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시력이 별로 안 좋은데도 관객의 눈물이 느껴지거든요. 내가 더 단단해져야겠다고 생각해요. 수많은 실비아를 위해서. 실비아와 같이 걷기 위해서. 너무 의지가 되기에 관객들에게 "여러분은 모두 소중한 존재"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배우 손지윤 (자료=이슬기 기자)

실비아는 필립과 올리버에게. 나아가 극장을 채우는 관객들에게. 진정한 '나'와 '행복'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물론 그것을 찾아 나서는 용기도 함께. 손지윤 또한 "관객들이 실비아를 통해 위로받았다고 이야기해주실 때 가장 큰 뿌듯함을 느낀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렇다면 인간 손지윤. 배우 손지윤의 행복은 무엇일까. 그는 가장 먼저 '가족'을 꼽았다.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걸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나온 결론이 가족이었고요. 2008년의 필립과 올리버는 배우 실비아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줘요. 내 곁에도 나를 지지해주고 힘이 돼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거.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감사하죠. 참 별거 없어요. 신랑하고 강아지하고 산책하는 즐거움. 그런 소소한 게 진짜 행복이란 생각을 해요."

또 그는 요즘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2007년 데뷔해 12년이라는 시간을 배우로서 살았다. 항상 몸도 정신도 건강해야 어떤 캐릭터도 잘 받아드릴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거기에 실비아가 더 큰 울림을 줬다.

"결국에는 건강한 배우이기 전에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고 나의 것을 나눌 줄 아는 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거든요. 그리고 제 행복을 관객과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제 직업은 제게 너무 완벽한 거 같아요.(웃음)"

[스테이지+] '프라이드' 손지윤, 잊지 못할 작품이란 확신 (인터뷰①) 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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