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박세아 기자] #얼마 전 공인중개사 A씨는 자신이 중개한 주상복합이 통째로 경매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근린생활시설과 주택이 섞여있던 이 건물에는 약 80세대가 입주해있었다. 근린생활시설에 분류된 호수에 거주하고 있던 임차인은 선순위 보증금에 밀려 자신의 보증금 반환 여부가 확실해 지지 않자 A씨에게 강력하게 항의하는 연락을 해왔고 법정 소송에 들어갈 것이라 엄포를 놨지만, 실행하지 못했다. 임대차 계약 체결 당시 이미 공시되지 않은 선순위 보증금 합계를 A씨가 설명하고 적어놨었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던 공인중개사 B씨는 소송을 당할 위기에 놓였다. B씨 역시 같은 건물에 임차인의 임대차계약을 진행했다. 하지만 선순위 보증금에 대해 임차인에게 구두로 설명해 줬지만 기재해놓지는 않았다. 이에 이를 문제 삼은 임차인은 B의 귀책사유를 물어 보증금 미반환에 대한 피해 보상을 청구하겠다고 통보해왔다.
앞으로 이와 같은 공인중개사와 임차인 간 분쟁이 상대적으로 적어질 전망이다. 임대차 계약 시 임차인이 거주하는 건물이 경매에 넘어갔을 경우 선순위 권리관계, 임차인 보호제도 등을 공인중개사가 반드시 설명하도록 바뀌었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실제 공시돼 있지 않은 사항들을 공인중개사가 적게 돼있었지만 형식에 불과했다. 현재는 공인중개사가 등기사항증명서, 건축물대장 등을 임차인에게 제시하고 설명한 뒤 서류에 체크 표시를 하게 돼있다.
국토교통부는 국무회의에서 공인중개사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 2일 의결함으로써 형식에 불과했던 공인중개사의 설명 의무를 강화시켰다. 이는 지난해 10월 공인중개사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데 따른 것이다.
공인중개사는 이번 개정안 공포 후 3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선순위 권리관계, 예컨대 임대인의 미납세금, 확정일자 부여 현황, 전입가구 같은 권리 사항과 소액 임차인 보호를 위한 최우선변제권 등을 설명하고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 서명해 거래 당사자에게 의무적으로 교부해야 한다.
법적으로 형식에 불과했던 사항을 의무로 바꾸면서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 서식도 변경한다. 현행 임대차 계약 관련 공인중개사의 확인·설명 사항을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 별도로 명기하고, 공인중개사와 임대인, 임차인이 서명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눈에 띄는 부분은 '관리비 총액과 세부 내역, 부과 방식'이 확인설명 의무대상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집주인이 전월세상한제 시행으로 편법으로 관리비를 높여 실제로 월세 인상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또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없는 중개보조원의 신분 고지 의무를 이행했는지 확인하기 위한 서식도 추가했다. 중개보조원이 중개사 행세를 하며 불법적으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거나 매물 광고를 올리는 등 행위를 근절하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이에 현장에서는 이와 같은 설명의무 확대를 반기는 분위기다. 한 공인중개사 C씨는 3일 "이전에도 등기부에 공시되지 않았던 권리사항들을 세부내역란에 공인중개사가 재량껏 기재해왔다"며 "이와 같은 사항이 법적 의무로 바뀜에 따라 일하기도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C씨에 따르면 기존에는 법적으로 재량껏 기재하도록 돼있었기 때문에 선순위 임차관계 등을 임대인에게 물으면 구두로 답변 받은 그대로 적을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선순위 보증금 합계가 얼마인지 공인중개사가 질문해 임대인이 10억이라고 답변하면 검증하지 못하고 적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임차인도 공인중개사도 불만을 제기할 수는 없었다. 세금 등 체납 내역에 민감한 임대인이 있다면 더욱이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공인중개사가 세밀한 정보를 더 요구할 근거가 없었다.
C씨는 "재량껏 해왔던 부분에 대해 강력한 법적 근거가 생김에 따라 임대차 계약 시 임차인과 임대인 간 신뢰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항목을 세분화해 의무 목록을 만든 것부터 정부가 과거보다 임대차 시장에 대한 중요도를 인지하고, 이해도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까지는 확인설명서 상 개업공인중개사 세부 확인사항 목록에 실제 관리관계 또는 공시되지 않은 물건의 권리 사항에 대해 기재하게 돼있었지만, 중요도가 떨어져 대부분 '해당사항없음'으로 의례적으로 적는 사람이 많았다"며 "이에 관할구청의 단속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라고 덧붙였다.
■함정은 무엇? 공인중개사와 임대인 분쟁 증가 우려
시행령 개정을 현장에서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지만 공인중개사와 임대인 간 분쟁이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표면적으로 임차인이 들어갈 집에 대한 자세한 정보에 대해 공인중개사에게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사항이 많아지지만, 공인중개사 입장에서는 임대인에게 관련 사항을 설명하기 까다롭고, 협조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수 있다.
임대인은 이전까지 임대차 계약시 의무적으로 국세완납증명서, 지방세완납증명세를 제출해줬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 시행령이 개정시행 되면 이에 더해 전세사고를 막기 위해 전입세대열람내역서와 확정일자 부여현황과 같이 협조해야 하는 사항이 많아진다. 다만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임대인의 존재가 공인중개사와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 공인중개사 D씨는 "임대인 중에는 연로하신 분들이 많아, 과거보다 늘어나는 제출 서류에 대뜸 화부터 내는 사례가 많다"며 "법이 바뀌었다고 설명을 해줘도 왜 내 집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알려고 하느냐는 답변으로 돌아올 때가 많아 중개에 어려움을 많이 겪고있다"고 말했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계약 전 전입세대열람내역서와 확정일자 부여현황 등을 집주인 동의 없이 뜯을 수 있지만, 실제 이를 위해서는 '임대차 계약서 원본'이 필요하다. 이에 임대차계약이 성사된 이후에나 해당 사항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확인하는 의미가 없기 때문에 집주인이 계약 당시 직접 발급받아 와야 실효성이 있다.
이에 이와 같이 개정된 확인설명서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공인중개사가 계약 전 집주인 동의없이도 물건의 전입세대열람내역서와 확정일자 부여현황 등을 조회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정부에서는 전세사고의 책임을 주로 공인중개사에게 전가하고 이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확인설명서 의무도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확인설명서 상 내용들을 계약 전에 미리 확인할 수 있도록 관련 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권리도 함께 강화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전세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임대차계약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상황을 다층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비단 한쪽의 의무만을 강화하거나 옥죈다고 해결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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