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영업점 모습 [자료=연합뉴스]
[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은행권의 영업시간 정상화 논의가 지연되는 가운데 KB국민은행이 일부 영업점의 점심시간 영업을 중단하는 제도를 도입해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노조를 중심으로 직원의 복지 차원에서 점심시간 셧다운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하지만 확 줄어든 은행 영업시간을 놓고 금융소비자의 불만이 커지고 있고 금융당국도 영업시간 정상화를 요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오는 30일부터 일부 출장소에 한해 점심시간 1시간 동안 영업을 중지하는 제도를 도입한다. 대상은 ▲공군교육사령부점 ▲무열대점 ▲충주공군부대점 ▲포항해병대점 ▲해군교육사령부점 ▲해군진해기지사령부점 등 9곳이다.
대형 시중은행에서 점심시간 동시 사용 제도를 도입한 곳은 국민은행이 처음이다. 앞서 대구은행·부산은행 등 지방은행이 소형 점포에 한해 점심시간 동시 사용 제도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군부대 등에 입점해 전체 직원이 두 명인 소형 출장소 아홉 곳에 한정해 시행할 예정”이라며 “교대 근무 시 직원 1명만 남게돼 보안, 경비상의 이유로 직원들의 중식시간 동시 사용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국민은행이 이러한 제도를 도입한 것은 최근 노조를 중심으로 점심 휴게시간을 보장해 달라는 직원들의 요구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점심시간 동시 사용 제도 도입은 금융노조의 숙원 중 하나다. 노동자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 근로기준법상 주어지는 1일 1시간 휴게시간을 쪼개지 않고 온전한 형태로 쉴 수 있도록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2018년 금융노사 간 산별교섭에서 1시간 법정 휴게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PC-OFF 제도’가 도입됐지만 직원들의 점심시간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 업무가 과도하게 몰리거나 휴가, 연수 등으로 직원 감소 시에는 점심 교대근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지난해 산별교섭에서 전국 모든 영업점을 대상으로 한 중식 시간 동시 사용을 요구했다. 비록 최종 합의안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노사 공동 태스크포스(TF)를 꾸려 향후 논의를 이어가기로 한 사안이다.
금융노조 산하 금융경제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국외에서는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환경에 기반해 은행들이 중식시간 셧다운을 통해 휴게시간을 보장하나 국내은행은 휴게시간 1시간 이용하지 못하는 은행 직원 비율이 22.3%나 되고 2018년 조사 당시 소화기 계통 질환을 경험한 은행직원 비율이 76.3%에 달한다”며 점심시간 동시 사용제도 도입 필요성을 주장했다.
앞서 2021년 본점과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2만4407명 은행직원을 대상으로 점심시간 동시 사용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71.2%의 직원이 찬성 의견을 냈다. 특히 4인 이하 및 5~6인 근무 지점·출장소에서 찬성 의견 답변 비율은 약 80%에 가까웠고 소규모 영업점일수록 찬성 의견이 많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바쁠 때는 15분 만에 점심을 먹거나 밥 안 먹고 일하는 일이 많았다”며 “지금은 PC가 강제로 꺼지기 때문에 어느정도 나아졌지만 일시해제해서 업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점심시간을 지키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에서 점심시간 동시 사용제도가 도입되면서 관련 논의가 물꼬를 텄지만 당장 전체 은행권로 확산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3시30분으로 단축 운영됐던 영업시간도 여전히 그대로인데 점심시간 셧다운까지 도입되면 고객의 불편이 더욱 가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 영업시간을 정상화하라는 금융당국의 압박도 점점 거세지는 상황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5일 국민은행 남대문종합금융센터를 찾아 “최근 코로나19 방역 상황이 정상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 영업시간도 복원하는 것이 국민들의 정서와 기대에 부합할 것”이라며 “빨리 노사간 협의가 이뤄져 영업시간이 정상화되기를 바란다”며 은행권을 압박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은 사기업이지만 공공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민적인 정서를 외면할 수 없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직원의 복지와 보안을 위해 점심시간 확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