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치발전은 투표참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프레이밍 정치 퇴출에 대하여

김정훈 기자 승인 2021.04.06 20:26 | 최종 수정 2021.04.06 20:28 의견 1
반병희 컬럼니스트 [자료=한국정경신문]


[한국정경신문=반병희 칼럼니스트] 사회학에서 시작돼 미디어에 접목한 프레이밍(framing)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학자들은 고상하고 격조있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지만, 쉽게 말하면 ‘기자가 의도한 대로 짜맞추어 보도하기’ 또는 ‘기자가 꾸민대로 뼈대와 틀을 세워 조작하기’ 정도가 된다. 복잡한 사건을 심층분석해 보도하는 경우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계획된’ 왜곡 편파보도가 귀착점이다.

프레이밍이 미디어의 이웃 동네인 정치판으로 넘어오면 요술보다는 요물이 된다. 불리한 정치판도를 순식간에 바꿔버리고 싶거나 난공불략의 명망가를 하루아침에 날리고 싶을 때 프레이밍 전술을 꺼내든다.

‘선거의 귀재’ ‘선거의 달인’이라며 여의도 정치판을 누비는 정치공학(‘정치공작’) 전문가들의 밥벌이기도 하다. 우리 쪽에 사용할 때는 ‘훌륭한 지도자’ 만들기라는 순기능도 있지만, 상대편에 응용할 때는 가차없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가족사와 관련한 ‘나쁜 사람’ 만들기, 이낙연 전 대표에 대한 ‘꼰대’ 이미지 조성 등은 강력한 잠재적 경쟁자를 깍아 내리기 위한 보수세력의 부정적 프레이밍 설정 사례다.

이번 서울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도 상대후보를 염두에 둔 부정적 이미지 만들기의 프레이밍 설정은 선거판을 ‘완벽하게’ 진흙탕 싸움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김영춘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를 두고 ‘성폭력 후계자 또는 뺑덕’이라는 이미지 덧씌우기나 박형준 국민의 힘 후보에 대한 ‘인륜파괴자’ 만들기는 유권자들의 정치 혐오증을 심각하게 부추키고 있다.

내곡동 땅과 관련해 생태탕, 페리가모 구두, 측량 현장 참석 여부 등을 동원한 오세훈 국민의 힘 후보 ‘거짓말장이’ 만들기 프레임, 가족의 거주용 도쿄 아파트를 빗댄 박영선 민주당 후보에 대한 ‘신사참배 뷰의 도쿄 아줌마’ 프레임 설정은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다.

역사적으로는 레닌이 정치 프레이밍의 교본이다. 레닌은 마르크스를 빌려 먼셰비키를 포함해 경쟁자들을 혁명에 반(反)하는 척결의 대상으로 설정했다. 이들을 노동자 농민의 대척점에 선 ‘착취계급의 부활’이라는 프레이밍에 가뒀다. 조직원(당원)과 대중을 대상으로 한 뱅가드파티(전위대)의 선전선동이 주효했다. 레닌의 이런 프레이밍을 통한 상대 제거 전술은 모택동 김일성 카스트로 등에게 유산으로 넘겨졌다.

586세대가 정치일선에 대거 등장한 이후 프레이밍 전술은 선거때 마다 전가의 보도로 활용되고 있다. 상대(진영)를 악으로 규정하고 역사의 죄인으로 만든다. 선거 초반에 칼집을 만지작거리며 분위기를 잡다가 중반이 되면 칼을 빼어 든다.

이때 공정과 탐사 보도를 앞세운 ‘우리편’ 미디어들은 전위대로 나서며 맹활약을 펼친다. 몸짓이 가벼운 방송과 인터넷언론이 앞장선다. 주연 배우는 각본에 따라 잘 꾸며진 무대에서 할리웃 액션 연기를 펼친다.

같은 노래와 장면을 수백 수천 번 반복해 듣고 본 관객들은 어느새 배우들의 연기에 감정이입되고 열광한다. 피날레는 ‘증인’이라는 조연급 배우가 증거물을 제시하며 극적으로 마무리한다. 이들의 공통된 목표는 상대를 동물사냥 하듯 ‘프레임’이라는 우리 속으로 몰아 넣는 것이다.

김대업의 대(對) 국민 사기극이 대표적이다. 김대업의 활약 덕분에 타깃이었던 이회창 당시 대통령후보는 돈을 주고 아들의 병역을 면탈시킨 ‘파렴치하고도 부도덕한 정치 지도자’라는 프레이밍에 갇혔다. 선거초반 압도적 우세는 물거품처럼 날아갔다.

이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선거 때마다 프레이밍 짜기는 되풀이 됐다. 유권자들은 곧이 곧대로 받아줬다. 암암리에 아군과 적으로 갈라선 신문과 방송들이 시간마다 쏟아내니 ‘본래 하늘은 빨간 색’이라고 해도 믿을 판이었다.

이 과정에서 스티그마 효과(stigma effect)라고도 불리는 ‘낙인(烙印)찍기’는 프레이밍 설정의 효과적인 수단으로 활용 된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는 마리 앙투아네트 처럼(‘나쁜 여자’ 앙투아네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승만 박정희 정권때 저항세력에 사용한 ‘빨갱이’ 낙인찍기가 그 실증적 사례다.

선거가 박빙세로 치달을수록 프레이밍 설정에서 낙인찍기는 기승을 부린다. 선점한 측은 유리한 국면을 맞게 되고, 당한 측은 초조해진다. 해명을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고, 한번 돌아선 민심은 요지부동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와 확증 편향에 익숙한 유권자들은 합리적인 사고와 사실 확인에의 자발적인 노력을 귀찮아 한다. 감정이 이성을 압도한다. 오죽하면 ‘천운’보다 중요한 게 ‘바람’(風)이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그렇지만 프레이밍 짜기에 능숙한 정치공학 전문가들이 놓치고 있는 사실이 있다. 기술의 발달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정치를 바라보는 개인의 정치적 태도가 진화한다는 점이다.

집단적 사고와 행동에 익숙한 40대 50대와는 달리 뉴노멀의 20대, 30대가 자신들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확증편향을 거부한 채 정치가 직접적 원인이 된 고통스러운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정치가 현실을 막무가내로 구속하고 왜곡하는 현실을 궤뚫어 보기 시작했다. 과거 세대와는 달리 집단적 사고에서 벗어나 정치판에 새로운 가치와 비젼을 요구하고 있으니 기성 정치판의 ‘꾼’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는 ‘참으로 바람직한’ 희극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로부터 촉발된 ‘프레이밍 짜기 퇴출’이라는 희망적 분위기가 힘을 얻을수록 조작과 공작에 익숙한 기성 선거전문가들은 좌불안석이다.

그러나 이 같은 움직임이 생명력을 갖고 계속 살아날 지 일시적 현상에 그칠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어렵사리 싹을 틔운 퇴행적 선거문화에 대한 거부와 반발이 영속성을 갖고 한국의 정치문화를 한단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MZ세대 뿐만 아니라 유권자 전체의 자성과 의지가 중요하다. 시민 개개인이 선전선동으로 이용된 정치 프레이밍에 걸려들지 않고 자율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정치 참여라는 의지 말이다.

그 답은 가까이 있다. 국민으로서 권리이자 의무인 투표 행위다. 4월7일 서울시장 및 부산시장 선거 투표가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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