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흑색선전, 마타도어, 괴벨스 그리고 깃발의 미덕

김성원 기자 승인 2021.03.29 16:36 | 최종 수정 2021.03.30 09:41 의견 0
반병희 컬럼니스트 [자료=한국정경신문]

[반병희=칼럼니스트] 깃발은 순수(純粹)의 결정(結晶)이다. 열정(熱情)의 표기(標旗)이다.

깃발은 집단을 먹고 자란다. ‘우리’아닌 ‘너’는 적폐이고 척결의 대상이다.

깃발이 신화를 만들어낼 때 군중은 열광한다. ‘집단화된 광기’(狂氣)의 분출이다. 미셸 푸코식으로 치면 생물학적 특성과 사회문화적 측면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동력(動力)이다. 여중생과 유모차까지 참여한 광우병의 군중이 그러했고 박근혜 탄핵이 그랬다. 노무현 탄핵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때 깃발은 완전무결해야 하고, 잘못이 있을 수 없는 무오류(無誤謬)의 절대권력이어야 한다. 깃발아래 뭉친 우리는 선(善)이고 정의(正義)이며 우리에게만 독점할 권리가 있다.

깃발이 격정(激情)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복종, 연대, 동질, 폐쇄, 조직, 희생, 집단, 영웅, 신화, 미란다(Miranda), 광장, 용광로 등은 깃발이 갖는 정치적 미덕이다. 깃발의 어느 모서리에도 크레덴다(credenda)가 들어설 틈은 없다.

합리, 이성, 도덕, 질서, 법, 공동선(共同善), 민주주의 등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편리한 선전 도구이자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 역시 화석화된지 오래다. 요즘 말로 ‘MZ세대’는 깃발아래에서는 ‘철없는’ 싸가지이들이다.

시인은 깃발에서 ‘소리없는 아우성’ ‘영원한 노스탤지어’라는 서정(抒情)을 찾아냈지만, 철학자는 이성(理性)과 합리(合理)를 파괴하는 깃발의 광기에 절망했다. ‘서정’과 ‘전체주의’가 공존하는 깃발의 두 얼굴에 헷갈리고 방황했다.

그게 역사였다.

히틀러가 먼저 행한 일 중 하나가 하켄 크로이츠 만들기였고, 마오쩌둥이 가장 경외했던 것 중 하나도 오성홍기였던 것 처럼. 김일성 또한 직접 제작을 지시할 정도로 붉은 별의 인공기를 사랑했고, 가다피 카스트로 차베스 푸닡 마두로 에르도안 트럼프 또한 군중의 깃발에 행복해 했던 것 처럼. 좀더 정확히는 ‘나를 향해, 우리만을 위해 깃발이 나부끼기’를 좋아했지만.

2021년 봄, 대한민국.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뽑는 보궐선거에서도 광장에 깃발을 꽂고자 하는 정치권과 이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개인의)침묵이 묘한 긴장관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여야 정치권은 집요하게 ‘집단화된 진영 논리’를 가치판단의 척도로 강요하고 있다. 한 개인(個人)은 깃발(집단)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며 감정을 배설을 해야 하는 전체 속의 부속품 쯤으로 간주한다. 개인의 의견이나 ‘나와 다름’, ‘진실’ 등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팩트(fact) 역시 중요하지 않다. 옳고 그름도 마찬가지다. 국가이익, 정의, 공정성 등의 가치도 구두선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늘 그렇듯이 이 과정에서 선전 선동은 대단히 효율적인 전략이 되고 미디어는 가장 적절한 수단이 된다.

새로운 흑색선전, 마타도어, 기상천외한 막말이 매일매일 창조된다. 깃발을 깃발답게 하는 유력한 수단으로서의 미디어는 친여(親與) 친야(親野)로 나뉘어 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 낸다. 여론과 시민반응에서 세(勢)불리를 느끼는 쪽이 좀더 적극적이다. ‘일단 이기고 보자’라는 절박감이 상식과 올바름을 압도한다. 거짓이나 모함도 아름다운 서사시로 둔갑한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깃발 아래 뭉쳐있기 때문이다.

괴벨스의 재현이다. 1934년 괴벨스가 제국의회를 장악할 때 사용했던 바로 그 수법이 100년이 지난 지금 되풀이 되고 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유대인은 악마였고 적이었다. ‘우리들의 영웅’ 히틀러는 신격화돼 갔고, 신문 방송 영화 음악 스포츠 등은 아리안족의 영광 구현에 최적화된 선전 도구로 전락했다.

토건족, 토착왜구, 쓰레기후보, 암환자, 독재자…

미디어, 특히 방송들이 연일 헤드라인 뉴스로 전달하고 있는 선거 현장의 언어들이다.

적법성 여부에 대한 팩트 확인보다는 어떻게 해서라도 부정적 이미지의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눈물겨운 모습(오세훈 후보와 관련한 내곡동 땅), 반일감정과 가족의 해외거주를 결합시키려는 온전치 못한 시도(박영선 후보의 도쿄 아파트) 등등은 흑색선전을 넘어 정치 혐오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깃발을 통해 국민 다수를 정치에서 분리시키려는 괴벨스의 망령을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다.

“내곡동 땅 있는 것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 거짓말하는 후보 쓰레기입니까, 아닙니까?”(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 2021년 3월 27일)

“수십억에 달하는 도쿄의 최고급 아파트를 구입하고, 일본항공의 주식을 100주나 산 토착왜구”(성일종 국민의힘 의원, 2021년 3월 25일)

아내가 어렸을 때 상속을 받은 땅이고, 억울하게도 시세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수용당한 것이 사건의 본질인데 ‘오후보가 언제 땅의 존재를 알았느냐’를 물고 늘어지며 거짓말쟁로서 오후보의 이미지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박후보의 남편이 근무지 변경으로 주거를 위해 도쿄에 아파트를 마련한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박후보를 토착왜구논란의 한가운데로 몰아넣고 있다.

어느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깃발 빼앗기 싸움은 날로 격화되고 있다.

벌써 민주당은 김영춘 후보 친형 땅의 특혜 매입 의혹을 제기한 국민의힘 황보승희 의원 등을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후보자 비방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부산시 기장군 배우자 명의 건물을 재산 신고에서 누락한 혐의로 박형준 후보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하기도 했다.

국민의힘도 박형준 후보에 대해 "조강지처를 버렸다"고 라디오에서 주장한 남영희 민주당 부산선대위 공동대변인에 대해 법적 조치를 준비 중이고, 이에 앞서 딸의 홍익대 미대 입시비리 의혹을 제기한 장경태 의원과 김승연 전 교수 등에 대해서도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깃발 아래 나부끼는 흑색선전과 마타도의 네거티브 선거켐페인은 우리 편 결집에, 또 정치혐오분위기 조성(투표율 저하)을 통한 선거통제에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해악(害惡)이자 독(毒)이다.

진정으로 국가를 생각하고 국민을 위한다면 조작된 깃발은 즉시 내려져야 한다. 깃발에 새겨진 마타도어 흑색선전 날조 등 격정의 언어도 지워야 한다.

유권자인 시민들에게 조곤 조곤 정책을 설명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정책대결이 빈 자리를 채워야 한다.

기득권세력이 돼 버린 진보진영의 수구적 집단논리와 오로지 개인의 이익만이 최고의 가치인 보수진영의 시대착오적 작태는 폐기돼야 한다.

선명하고도 짙은 원색의 깃발일수록 색깔은 바래기 쉽다. 지지 않는 영원한 깃발은 없다. 바람에 찢기고 햇빛에 그을리는 즉시 새로운 깃발로 대체된다. 광장의 생리가 그렇다.

늦었지만 당장 오늘부터라도 민주주의라는 광장에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순정의 깃발을 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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