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국 임윤희 부장
[한국정경신문=임윤희 기자] 스포츠를 보는 권리를 앱과 결제 조건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예전처럼 “TV만 켜면 되는 경기”가 점점 “어디에 가입했느냐에 따라 갈리는 경기”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는 NBA를 보려면 TV 리모컨과 케이블 스포츠 채널 하나면 충분했다. IPTV 스포츠 패키지만 가입해 두면 주말 낮이든 평일 저녁이든 채널만 맞추면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한국에서 NBA를 제대로 보려면 쿠팡플레이에 들어가 ‘스포츠 패스’를 결제해야 한다. 화면은 같은 농구인데 시청 조건은 채널 번호에서 특정 앱과 요금제로 옮겨갔다.
국내 리그와 e스포츠도 비슷한 흐름이다. KBO는 티빙이 온라인 생중계를 책임지고 해외 축구와 NBA·F1 같은 인기 종목은 쿠팡플레이 쪽으로 모였다. LCK는 네이버와 SOOP이 5년 파트너십을 맺고 국내 생중계를 전담한다.
팬들은 종목마다 다른 서비스를 골라 가입해야 한다. 한두 개만 선택하면 나머지 경기에서는 자연스럽게 공론장 밖으로 밀려난다. 예전에는 “어느 채널에서 하더라”만 확인하면 됐지만 지금은 어디에 가입해야 할지 찾아봐야 하는 구조다.
'넷마블 프로야구 2022' 부산 사직구장 모습. (사진=넷마블)
방송법에는 ‘보편적 시청권’이라는 말이 있다. 국민적 관심이 큰 경기와 행사는 국민이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법은 지상파와 케이블, 위성이 중심이던 시기에 만들어졌다.
디지털 전용 중계권과 OTT 독점은 처음부터 제도 설계 밖에 있었다. 앱 안에서만 볼 수 있는 유료 멤버십과 스포츠 패스 구조에는 법이 거의 닿지 못한다. 법이 그려 놓은 “누구나 볼 권리”와 사람들이 실제로 스마트폰과 OTT로 스포츠를 소비하는 방식 사이에 빈틈이 생긴 이유다.
스포츠 중계권 거래 자체를 문제 삼자는 것은 아니다. 리그와 협회는 중계료로 선수와 인프라에 투자하고 플랫폼은 그 대가로 시청료와 광고 수익을 가져간다. 이 구조 자체는 자연스럽다.
다만 스포츠를 여전히 “모두의 것”이라고 부르고 싶다면 어디까지는 누구나 볼 수 있어야 하는지 최소한의 기준은 필요하다.
월드컵과 올림픽처럼 국가 전체가 함께 보는 대회는 지금처럼 여러 통로를 유지할 수 있다. 그 아래 층인 KBO·NBA·해외 축구·LCK 같은 ‘생활 속 경기’까지 전부 특정 앱과 요금제 안에만 가둘 것인지 정도는 한 번 짚어봐야 한다.
그 기준을 정하지 못하면 스포츠는 점점 어느 앱에 얼마를 냈느냐에 따라 갈리는 콘텐츠로 굳어질 것이다. 그때도 보편적 시청권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수 있을지 지금 묻지 않으면 나중에는 물을 기회조차 잃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