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더랩 김경수 대표

AI 전환을 미루던 기업들은 이미 뒤처지고 있다. 전략·조직·문화 전반을 재해석하지 않으면 생존조차 보장되지 않는 ‘위기 경영의 시대’가 열렸다.

요즘 많은 경영자들이 비슷한 말을 한다. “사업이 나쁘진 않은데, 뭔가 예전 같지가 않다” 매출이 급락하지는 않았지만 경쟁사의 속도가 예전보다 훨씬 빨라 보이고, 보고서는 계속 쌓이는데 의사결정은 이상하게 굼뜨다. 실무자들은 어디선가 압박을 느끼는 눈치고, 조직 전체에 보이지 않는 피로감이 맴돈다. 그런데 정작 위기의 원인이 뭔지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이 막연한 불안감의 정체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다.

“회사에는 이미 AI가 들어와 있는데, 경영자만 그 속도를 모른다.”

생성형 AI가 등장한 뒤, 실무 현장은 이미 많이 달라졌다. 마케터는 GPT나 제미나이로 카피 초안을 뽑고, 기획자는 제미나이로 시장 자료를 정리한다. 어떤 팀은 노트북 LM으로 회의록을 자동 요약한다. 어떤 팀은 보고서 초안을 AI에게 먼저 쓰게 한 뒤 사람이 다듬는다. 예전에는 이틀 걸리던 작업이 반나절 만에 끝나고, 수십 장짜리 레포트도 몇 분이면 뼈대가 잡힌다.

문제는 이 변화를 ‘몸으로’ 느껴본 경영자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데 있다. AI를 도입했다는 보고는 받았지만, 직접 써보지 않았고, 실제 속도의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도 잘 모른다. 그래서 의사결정은 여전히 예전 방식대로 이뤄지고, 전략 수립 과정도 과거의 감각에 머무른다. 이때부터 경영과 현장의 리듬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위기의 본질은 기술 격차가 아니라 감각의 격차다.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미 AI를 손에 쥐고 있지만 회사의 방향을 정하는 사람은 AI 없는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간극이 쌓이면 어느 순간 “우리는 왜 이렇게 느리지?”라는 자각이 뒤늦게 찾아온다. 여기서 많은 경영자들이 착각하는 지점이 하나 있다.

“AI는 직원들이 잘 쓰면 되는 거 아닌가?”

겉으로는 맞는 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직원들만 AI를 쓰고, 경영자가 쓰지 않는 구조가 가장 위험하다. 실무의 속도는 빨라지지만 최종 결정을 내리는 속도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내려오는 승인과 판단이 느리면 아래에서 아무리 빠르게 움직여도 결국 전체 조직의 속도는 올라가지 않는다.

그럼 왜 경영자가 직접 써보는 게 그렇게 중요할까.

첫째, 한 번만 제대로 써봐도 “무엇이 가능한지” 감이 온다. AI에게 “우리 회사 고객 유형을 정리해줘”, “최근 6개월 실적 요약해서 경영 회의용으로 정리해줘”, “이 신사업 아이디어의 장단점을 나눠서 설명해줘” 이렇게만 시켜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정보가 정리되는 방식, 보고서의 구조, 인사이트가 도출되는 속도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이 경험을 해본 사람과 해보지 않은 사람의 전략 감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둘째, 직접 써봐야 조직의 역할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도 보인다. 실제로 AI를 업무용으로 돌려보면 금방 느끼게 된다. “이런 정리 작업은 이제 사람이 안 해도 되겠구나”“반대로 이 결과를 해석하고 방향을 정하는 일은 더 중요해지겠네”..이 지점이 바로 ‘미래 직무 설계’의 출발이다. 단순 반복 업무는 줄어드는 대신 전략·기획·해석·브랜딩 같은 영역의 가치는 훨씬 커진다.

AI를 직접 써본 적 없는 경영자는 어떤 일을 없애고 어떤 일을 키워야 할지 그림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인력 구조 조정은 늘 ‘숫자 맞추기’ 수준에 머물고, 조직의 진짜 경쟁력은 오히려 약해진다.

셋째, 경영자의 시간 사용법이 근본적으로 바뀐다. AI에게 회의 자료 요약, 첫 초안 작성, 경쟁사 리포트 정리 같은 일을 맡기면 경영자의 머리는 훨씬 다른 곳에 쓸 수 있다. 예전에는 문장을 고치고 PPT 슬라이드를 정리하는 데 에너지를 많이 썼다면 이제는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 “어떤 가설을 세우고 실험해볼 것인가”에 집중할 수 있다. AI는 손을 대신하지만 머리를 대신하지는 않는다. 다만 머리를 쓸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만들어준다. 이것은 단순한 편의성이 아니라 경영의 질을 바꾸는 변화다.

물론 이런 말을 들으면 이렇게 반응하는 분들도 있다.

“나는 IT에 약해서…”, “시간이 없어서…” 그런데 사실 경영자가 AI를 ‘잘’ 쓸 필요는 없다. 처음부터 복잡한 프롬프트를 쓸 필요도 없다.그냥 평소에 직원에게 말하듯이 써보면 된다. “올해 우리 회사 상황을 외부 투자자에게 설명하듯 요약해줘.” “이 자료를 내일 회의용으로 5가지 포인트로 줄여줘.”이 정도만 해도 AI의 힘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중요한 건 완벽하게 쓰는 게 아니라 “이 도구가 우리 회사 일하는 방식을 어디까지 바꿀 수 있겠구나”를 경영자가 직접 느끼는 것이다. 그 감각이 있어야만 어떤 부서에 어떻게 적용할지, 무엇을 자동화하고 무엇은 사람에게 남겨둘지, 어떤 인재를 새로 뽑아야 할지 같은 의사결정이 가능해진다.

한편으로는 책임의 문제도 있다. 이제 마케팅 이미지, 광고 카피, 브랜디드 콘텐츠 상당수가 AI를 통해 만들어지거나 보완된다. 저작권, 데이터 출처, 편향성 같은 이슈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자가 AI를 한 번도 써보지 않았다면 리스크를 논의할 때도 표면적인 설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법무에서 괜찮다니까”, “플랫폼에서 책임진다니까” 수준에서 멈춘다면 그건 리스크 관리가 아니라 운에 맡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AI를 직접 다뤄본 경험이 있을 때, “이런 생성 과정이라면 저작권 이슈가 있을 수 있다”, “이 정도 가공이면 충분히 인플루언서와 충돌이 날 수 있다” 같은 감각이 생긴다. 결국 AI 시대의 위기는 기술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위기는 경영자가 변화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과거의 감각으로 판단할 때 찾아온다. 직원들은 이미 하루에 수십 번씩 AI와 함께 일하고 있다. 회사의 언어, 데이터, 고객, 숫자를 AI가 다루고 있다. 그런데 그 과정과 속도를 경영자만 모른다면, 그 회사의 방향은 어쩔 수 없이 어긋난다.

결론은 아주 단순하다. 경영자들은 지금 당장 AI를 써봐야 한다. 단. 검색용이 아니라 업무용으로 말이다.

노트북LM이든, 제미나이든, GPT든 무엇이든 상관없다. 오늘 당장 자신의 노트북을 열고 AI에게 말을 걸어보면 된다. 이번 분기 실적을 요약해달라고 해보고, 다음 분기 전략 아이디어를 뽑아보라고 시켜보고, 마케팅 캠페인 콘셉트를 10개만 제안해달라고 요청해보자. 그 결과물을 보고 나면, 조금은 깨닫게 될 것이다. “아, 이건 그냥 유행이 아니구나.”

AI를 쓰는 직원이 있는 회사와,AI를 이해하는 경영자가 있는 회사는 전혀 다른 미래를 맞게 된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우리 회사에 AI가 들어왔는가?”가 아니라, “나는 경영자로서 AI를 쓰고 있는가?”로. 이 질문에 “예”라고 답하는 순간, 위기는 이미 기회로 바뀌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