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더랩 김경수 대표
AI 가수가 실제로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리는 시대가 왔다. 단순한 화제성 이벤트가 아니다. 음악 산업의 구조 자체가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기술이 예술을 돕는 단계를 넘어 이제는 비인간 아티스트가 시장에서 경쟁자이자 주력 플레이어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등장한 AI R&B 가수 자니아 모네의 성공은 이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자니아 모네는 2025년 자신의 대표곡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로 빌보드 R&B 에어플레이 차트에 진입하며 AI 아티스트 최초의 라디오 차트 기록을 세웠다. 이 곡은 R&B 디지털 송 세일즈 차트에서도 1위를 기록하며 AI 가수가 과연 상업적 성과를 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실제 데이터로 답을 제시했다.
컨트리 장르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났다. 브레이킹 러스트의 곡 ‘내 방식대로 걷겠다’는 빌보드 컨트리 디지털 송 세일즈 차트에서 1위를 했다. 감정적 서사를 중시하는 컨트리 음악에서조차 AI 음원이 차트 정상에 올랐다는 사실은 음악 시장의 저항선이 이미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플레이리스트 중심의 음악 소비 구조가 있다. 지금의 음악 소비는 누가 불렀는가보다 지금 내 감정과 맞는가가 판단 기준이다. 플랫폼 알고리즘이 선호하는 사운드와 분위기만 충족하면 AI 아티스트의 곡도 자연스럽게 추천 목록에 오르고 이 흐름이 차트 성과로 이어진다. 인간 아티스트의 정체성은 소비 우선순위에서 점차 뒤로 밀리고 있다.
Z세대의 감수성 역시 AI 아티스트 수용을 빠르게 확산시키는 요인이다. 이들은 이미 버추얼 아이돌 아바타 기반 크리에이터 AI 스트리머 등을 일상적으로 소비한다. 가수는 반드시 인간이어야 한다는 관념을 고집하지 않는다. 자니아 모네처럼 초현실적 비주얼과 독자적 세계관을 구축한 AI 아티스트는 오히려 새로운 콘텐츠 경험을 제공하는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팬들은 캐릭터에 감정적으로 투자하고 세계관을 확장하며 인간 가수와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관계를 형성한다.
이 같은 변화가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예술의 진정성 감정의 본질 인간 아티스트의 노동 가치 저작권 문제 등 다양한 논쟁이 함께 떠오르고 있다. 특히 AI 데이터 학습 과정의 투명성 음성 스타일 모방 문제 음악 창작의 윤리 등은 아직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장은 이미 빠르게 이동하고 있으며 소비자는 실제로 AI 음악을 듣고 선택하고 구매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성공은 코카콜라의 AI 광고 논란과 대비된다. 코카콜라의 AI 기반 광고는 기술 과잉이 정서적 결핍으로 이어져 소비자에게 거부감을 샀지만 음악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감각 기묘함 초현실적 분위기가 매력으로 작용한다. 같은 AI 기술이라도 콘텐츠 장르에 따라 소비자의 허용치와 기대감이 달라진다는 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AI 아티스트는 이제 단순한 음원 제작 단계를 벗어나 하나의 브랜드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24시간 콘텐츠를 생산하고 실시간으로 팬 반응을 반영하며 세계관을 무한히 확장할 수 있다. 이는 엔터테인먼트 산업뿐 아니라 마케팅과 브랜딩 전략에도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브랜드 모델 협업 가상 공연 경제 팬덤 기반 캠페인 등에서 AI 아티스트는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AI 가수들의 빌보드 차트 입성은 음악 산업의 미래가 이미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예술가 팬덤 콘텐츠 제작 브랜드 협업의 정의가 근본적으로 재해석되고 있으며 이는 기술과 문화가 만나는 지점에서 매우 중요한 변곡점이 되고 있다.
앞으로 산업이 던져야 할 쟁점은 AI가 인간을 대체하는가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AI와 인간이 함께 만드는 새로운 예술 팬덤 시장 구조는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이 질문에 먼저 답하는 브랜드와 창작자가 다음 시대의 주도권을 갖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