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더랩 김경수 대표
콘텐츠, 광고, 디자인 등 다양한 산업에서 생성형 인공지능의 실무 활용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저작권과 인간 창의성의 경계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기술과 인간이 함께 일하는 ‘공존의 창작’은 이제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 카피라이터는 AI와 함께 일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화에서나 들리던 말이 현실이 되었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더 이상 연구소의 기술이 아니다. 이제 브랜드 캠페인 기획, 디자인 시안 제작, 영상 콘셉트 제안까지 실무 전반에 들어왔다.
글로벌 조사 기관인 가트너에 따르면 전 세계 마케팅 기업의 63%가 AI를 이용한 콘텐츠 제작을 이미 도입했다. 국내에서도 대형 광고대행사들이 ‘AI 크리에이티브팀’을 신설하고 있다. 효율성과 속도, 그리고 비용 절감. AI의 등장은 분명 실무 혁신을 불러왔다.
동시에 불안도 커진다. “AI가 만든 이미지는 진짜 창작일까?”, “창의의 주체는 누구인가?”, “인간은 여전히 필요한가?” 이 물음들은 단순한 철학적 논쟁이 아니라, 콘텐츠 산업의 현실적 고민이 되었다.
고민에도 불구하고 AI는 이미 창의 산업의 일상 도구가 되었다. 디자이너는 미드저니로 아이디어 스케치를 만들고, 마케터는 챗GPT로 카피를 작성한다. 영상 제작자들은 런웨이나 피카 같은 AI 영상 생성기를 이용해 콘셉트를 테스트한다. 유튜브에는 수노를 통해 창작한 음악들이 업로드 된다.
이 변화는 단순히 ‘빠르게 만드는 시대’가 아니라 ‘다르게 창작하는 시대’를 뜻한다. 창의력은 더 이상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능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AI의 산출물을 분석하고 조합하며 그 안에 인간의 감정과 맥락을 불어넣는 능력 이제 그것이 새로운 창의력이다. 즉, AI의 계산력과 인간의 감성이 만날 때 진짜 창작이 완성된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열어준 창작 시대는 ‘대체의 시대’가 아니라, ‘확장의 시대’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방대한 학습 데이터에서 비롯된다. 즉, 누군가의 작품이 AI의 학습 재료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그 결과물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을까?
2024년, 미국에서는 한 작가가 인공지능으로 그린 그림을 저작권으로 등록하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창작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기 때문”. 반면 일본은 AI 생성물의 저작권 규제를 완화하며 산업 활용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이처럼 각국의 입장은 다르지만 방향은 하나다. ‘AI가 창작에 얼마나 개입했는가’, 그리고 ‘인간이 그 결과물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가 앞으로 저작권의 핵심 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AI 시대의 창작은 이제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창작으로 진화하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또 다른 그림자는 ‘무단 학습’이다. 이미 여러 예술가와 사진작가들이 “AI가 내 작품을 무단으로 학습했다”며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특히 이미지 생성 기술은 수백만 장의 예술 작품을 인터넷에서 자동 수집해 학습하기 때문에 원저작자의 동의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 이는 단순한 표절이 아니라, 데이터 주권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AI의 성능은 결국 누가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AI 창작 시장에서는 ‘데이터의 윤리적 출처’와 ‘투명한 이용 계약’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다. 광고주 입장에서 법적 소유권이 불분명한 AI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 AI를 쓰더라도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투명한 관리 체계가 필수가 될 것이다.
AI가 인간을 대체하는가? 아니다. AI는 인간이 미처 떠올리지 못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존재다. 일본의 한 광고회사에서는 인간 크리에이티브 팀과 AI팀이 공동으로 광고를 제작한 결과, 소비자 반응이 기존 대비 27% 상승했다는 보고가 있다. AI가 아이디어의 초안을 만들고, 인간이 감정과 스토리를 더하는 구조.가장 이상적인 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의 콘텐츠 산업은 ‘AI가 만든 작품’이 아니라 ‘AI와 인간이 함께 만든 결과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협업의 경계가 사라지는 이 흐름 속에서, 인간의 역할은 단순한 제작자가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는 해석자로 바뀌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여는 창작 시대는 인간의 창의성을 위협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가능성을 넓혀준다. 그 힘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저작권 기준, 투명한 데이터 이용, 그리고 인간의 윤리적 통제가 필요하다. 앞으로의 창작은 ‘AI 대 인간’의 대결이 아니라, ‘AI와 인간의 협력’이라는 새로운 균형 속에서 발전할 것이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지는 않는다. 다만, AI와 함께 창의의 무대에 설 준비가 된 사람만이 미래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