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내년 우체국을 시작으로 은행대리업이 본격 도입된다. 디지털 소외계층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은행의 점포 폐쇄를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금융당국은 시범 운영 기간 중 인근 점포 폐쇄를 제한하는 부가조건을 걸었지만 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한 시중은행 점포 앞에 폐쇄 안내문이 붙어 있다. (자료=연합뉴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내년 상반기 중 우체국 등에서 은행대리업 시범운영을 시작한다. 은행 고유 업무를 제3자가 대면으로 대신 수행하는 제도다. 예·적금 가입, 대출 상담, 계약 체결 등을 은행 대신 처리한다.
금융당국은 은행 영업점 감소에 따른 고령층 등 취약계층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이 제도를 추진해 왔다. 내년 우체국을 시작으로 향후 저축은행, 상호금융 등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문제는 은행대리업이 점포 폐쇄의 대체수단이나 정당화 명분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은행들은 ‘우체국 대리점이 있으니 직영 지점은 불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울 수 있다.
비용 절감 유인도 크다. 은행들은 이미 디지털화로 방문객이 급감한 비수익성 지점을 줄이고 있다. 저비용 네트워크인 우체국 등이 생기면 인건비와 임대료 절감을 이유로 더 적극적으로 폐쇄할 수 있다.
금융당국도 이런 우려를 인식하고 있다. 금융위는 시범 운영 단계에서 은행대리업을 이유로 인근 영업점을 폐쇄하는 것을 제한하는 부가조건을 걸었다. 또 점포 폐쇄 시 6개월 전 신고를 의무화하고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사전영향평가 등의 가이드라인도 운영 중이다.
하지만 자율규제 성격의 부가조건과 가이드라인만으로는 장기적으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법적 강제력이 없어 은행이 형식적으로 절차를 이행한 뒤 폐쇄를 강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2021년 점포폐쇄 가이드라인을 강화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은행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0년 말 전국 6411곳이던 은행 점포수는 올해 1분기 말 5559곳으로 줄었다. 점포폐쇄 절차가 강화에도 연평균 150곳 이상이 사라진 셈이다.
장기적으로 은행대리업이 안착하기 위해서는 자율규제를 넘어선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현재 국회에서는 점포 폐쇄 절차를 법률로 규정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 7월 이정문 의원 등 11인이 발의한 ‘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대표적이다. 개정안은 영향평가 실시와 사전 공시, 대체수단 마련을 의무화했다.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제재 규정도 담았다.
금융위는 의원 제출 법안을 보완하거나 별도의 정부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