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차유민 기자] 보험료는 유지되거나 소폭 인상되는 흐름이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예전보다 보험금을 받기 어려워졌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명시적인 약관 축소 없이도 보장 체감이 낮아지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일부에서는 이를 '보험판 슈링크플레이션'에 빗대어 해석하는 시각도 나온다. 이는 가격은 그대로 둔 채 중량만 줄여 판매하는 방식을 말한다.
보험료는 유지되거나 소폭 인상되는 흐름이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예전보다 보험금을 받기 어려워졌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최근 보험 약관에서 보장 범위를 전면적으로 축소하는 사례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보험사들은 약관 변경 과정에서 내부 심의팀과 법률 검토를 거쳐 소비자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 과대광고나 소비자 오인을 유발할 수 있는 표현 역시 제한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소비자 체감과 민원 지표는 다른 흐름을 보인다. 금융감독원의 금융민원 동향에 따르면 보험 민원은 전체 금융 민원에서 여전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분쟁 민원보다 단순 질의나 일반 민원이 빠르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약관 위법이나 불완전판매보다는 지급 기준과 보장 체감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보험 민원 처리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점도 체감 악화 논란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보험 민원 평균 처리 기간은 최근 수년간 꾸준히 늘어나며 소비자 불편이 확대되고 있다. 지급 요건과 절차가 세분화되면서 보험금 청구 과정이 과거보다 복잡해졌다고 느끼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흐름은 제도 변화로도 이어진다. 금융위원회는 보험 민원 처리 효율화를 위해 보험업감독규정을 개정하고 내년 1월부터 금감원이 담당해 온 일부 단순 보험 민원을 생명·손해보험협회로 이관할 계획이다. 보험 관련 민원이 구조적으로 누적되면서 감독당국의 업무 부담이 커졌다는 판단에서다.
이러한 민원 증가의 배경으로 '체감 보장 축소'가 있다. 약관상 보장 항목은 유지되더라도 지급 요건이 세분화되거나 해석 기준이 까다로워지면서 소비자가 기대한 수준의 보험금을 받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보험료는 그대로지만 실제 보호 수준은 낮아졌다고 느끼는 구조가 형성된다.
전문가들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슈링크플레이션 논란이 단순히 가격이나 약관 변화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와 체감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보장 축소가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지급 요건 강화나 해석 기준 변화로 소비자가 느끼는 실질 가치는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보험업계에서는 이런 현상을 보장 축소로 해석하는 데에는 선을 긋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료 인상은 사회적 부담이 큰 만큼 제한적이지만 보험사기 증가와 손해율 관리 필요성 등으로 지급 기준과 보장 구조가 점차 정교해진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