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 동맹' 비현실적이다] (상) "당신이라면 핵심 기술을 공유하겠나"

김성원 기자 승인 2020.07.29 09:51 | 최종 수정 2020.07.29 22:47 의견 2
현대자동차,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로고 (자료=각 사) 

[한국정경신문=김성원 기자] 최근 'K-배터리 동맹'이라는 낯선 단어가 등장했다.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배터리 제조업체 '빅3'인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이 국가 차원의 배터리 산업경쟁력을 위해 협력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얘기다. 주로 언론에서 제기하는 아이디어 차원의 시사 용어지만 관련 업계와 학계에서는 '넌센스'라는 지적이 많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에 본지는 ''K-배터리 동맹'의 현황과 전망에 대해 상,하로 긴급 진단해 본다. <편집자 주>

■ 배터리 산업, 2025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보다 커져 '제2의 반도체'

29일 업계와 정부 등에 따르면 전세계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로 급속히 전환되는 가운데 배터리가 '제2의 반도체'로 불릴 정도의 엄청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실제 지난해 약 220만대가 판매된 전기차는 2025년이면 1200만대 이상으로 늘어나고, 배터리 시장도 약 180조원으로 커질 예정이다. 이는 2025년 약 170조원으로 예상되는 메모리반도체 시장보다 더 큰 규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을 '국가 대항전'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국내 업체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여기저기서 흘러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배터리 업체간 협력은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환상에 불과하다며 평가절하한다.  오히려 이러한 행보는 국제 무역관련 기구나 다른 나라 정부들에게 담합행위로 간주돼 피소될 수도 있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글로벌 자동차 업체의 수주전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회사들이 갑자기 모여 협력한다는 자체가 완전히 넌센스”라며 “미래 배터리 개발에 힘을 모으라는 얘기도 서로가 지향하는 기술도 다른데다 어느 누구도 핵심 기술을 공유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우선 LG화학과 삼성SDI의 경우 90년대부터 서로 뜨거운 신경전으로 세계적인 업체로 성장해 왔는데 한참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과 협력하라는 것도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반론도 많다. 협력은 기본적으로 모든 참가자들에게 공정해야 하고 모두에게 이 이익이 될 것이라는 '양해'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지금의 경쟁구도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진단이다.

다른 사례로 전자업계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글로벌 선두업체로 도약한 것은 치열한 기술 개발과 국내외 시장 개척의 결과이지 양사 협력을 기반으로 오늘날 글로벌 무대에서 우월적 지위를 확보한 것은 아니다.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성장 역시 반도체 동맹이 아니라 각자 도생과 경쟁업체의 거센 추격을 따돌리기 위한 선제적인 투자와 피 말리는 기술 개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특히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경우는 더하다.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두 회사에게 미국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조기패소 판결이 난 상황에서 협력하라고 하는 것은 글로벌 시각으로 보면 기술을 탈취해 간 중대 범죄행위를 한 기업과 손을 잡으라고 떠미는 격이라는 것이다.

■ “미국과 EU는 한국보다 더 엄격하게 정보교환행위를 담합으로 규제"

배터리 업체간의 협력은 법률적으로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경고는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한 공정거래분야 전문가는 “미국 셔면법과 EU의 기능조약 등에 따르면 한국보다 더 엄격하게 정보교환행위를 담합으로 규제하고 있다"면서 "동종업계 기업들이 구체적인 합의없이 교환된 정보를 바탕으로 동조적 행위를 하는 경우 이를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배터리 업체들의 주요 고객들이 대부분 미국과 EU에 소속되어 있는데 어설프게 협력방안을 논의할 경우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로부터 담합으로 피소당할 수도 있고, 피해 내용에 대해 소비자 집단의 민사소송까지 예상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를 종합적으로 감안했을 때 국내 배터리 업체간의 동맹이나 협력은 사실상 현실성이 없다. 오히려 어설프게 접근할 경우 산업 경쟁력 강화는 고사하고 대규모 법정 다툼으로 비화될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라는 것이 업계의 전반적인 평가다.

하지만 지난 5월까지 국내 배터리 3개사의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은 34.7%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16.5%에서 두배 이상 급증했다. 언론이나 정부가 'K-배터리 동맹'이라는 희망사항에 슬그머니 밥 숟가락을 얹고 싶은 이유다.

국내 배터리 업체 별로 세계 시장 점유율(1~5월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 기준)을 보면 LG화학이 24.2%로 1위다. 삼성SDI는 6.4%로 4위, SK이노베이션은 4.1%로 7위다. 이에 비해 중국의 CATL은 22.3%로 2위, 파나소닉은 21.4%로 3위다. LG화학이 현재까지는 선두지만 한국, 중국, 일본 업체들이 치열하게 주도권 경쟁을 벌이는 구도이다.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세계 시장에서 같은 국적이라는 이유로 동업자 의식을 가져라는 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다"며 "한-중-일 3국이 각축전을 벌이는 '배터리 전쟁'에서 생존을 결정짓는 건 각자의 실력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지식과 문화가 있는 뉴스> ⓒ한국정경신문 | 상업적 용도로 무단 전제, 재배포를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