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하는 공공기관] ② "불만 제기땐 퇴출"..한난, 하도급·솜방망이 처벌 무시

김수은 기자 승인 2020.07.06 15:47 | 최종 수정 2020.07.06 17:53 의견 0
한국지역난방공사 황창화 사장 (자료=지역난방공사)

[한국정경신문=김수은 기자] 지역 냉난방과 신재생 에너지 사업을 담당하는 한국지역난방공사(한난) 황창화 사장은 지난 2018년 취임 당시 제도·정책·관습 등 기존 패러다임의 변화를 강조했다. “경영혁신을 통해 국민으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는 공기업이 되도록 하겠다”며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정의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끊임없이 함께 고민하자”는 당부의 메시지도 전달한 바 있다.

하지만 황 사장 재임 중 감사원 감사를 통해 드러난 사실을 살펴보면 불공정 관행은 개선하지 않은 채 경제적 이윤 창출에만 급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하도급 업체 입장에서는 원청인 한난에 불만을 제기하는 즉시 시장 퇴출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에 '갑질하는 공공기관'은 넘지 못할 산인 셈이다. 

■ 추가 공사비·인허가·민원 발생 비용 떠넘기는 부당 특약 승인

6일 감사원이 지난해 12월 공개한 감사보고서 ‘공공기관 불공정관행 및 규제 점검’에 따르면 한난은 지난 2019년 1월 동탄-고덕 연계 열수송관 배관공사 시 하수급인에게 허가 조건과 공정 여건 변동으로 인한 추가 공사비를 요구할 수 없도록 하는 불공정 계약을 승인했다.

한난은 시공에 필요한 인허가 비용과 민원 발생에 따른 비용도 하수급인이 부담하도록 하는 등 17건의 부당 특약이 있었지만 그대로 승인해 주의 처분을 받았다.

하도급법 제3조의4 제1항과 제2항에 따르면 하수급인의 이익을 제한하거나 수급인에게 부과된 의무를 하수급인(하도급업체)에게 전가하는 등의 특약을 설정하지 못하도록 규정돼 있다. 공정여건 변동으로 인한 추가 공사비와 인허가 및 민원 발생에 따른 비용은 마땅히 수급인(협력업체)의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발주처인 한난은 이 비용을 하수급인이 부담하도록 하는 부당 특약을 그대로 승인했다.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한국지역난방공사 전경. (자료=지역난방공사)

■ 허위계약 승인 등 관리감독 부실로 12억여원의 피해 발생

한난이 불공정 관행으로 갑질을 일삼은 것은 이 뿐 만이 아니다. 지난 2017년 3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진행되는 ‘중앙지사 중앙열원시설 개체공사’ 계약을 체결하면서 수급인이 통보한 16건의 하도급 계약을 부실하게 검토했다.

특히 이중 3건의 하도급 계약에서는 키스콘(건설산업종합정보망)을 통해 하수급인으로부터 통보받은 계약금액과 수급인으로부터 통보받은 계약금액에 큰 차이가 있었는데도 그 사실을 철저히 확인하지 않아 하수급인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감사원 감사 결과 수급인이 해당 공사와 관련해 한난에 통보한 하도급 계약이 허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급인인 협력업체 A는 해당 공사 계약을 체결하면서 9억8900만원으로 하도급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수급인은 하도급 대상 금액인 15억4640만원 대비 하도급률이 63.95%에 불과해 도급계약 적정성 심사기준에 따른 하도급률(82%)에 못 미치게 됐다. 하도급률을 82% 이상으로 맞추기 위해 하수급인과 협의 없이 허위 계약서를 작성한 것이다. 수급인은 계약금액을 12억9200만원(하도급률 83.55%)으로 바꾼 허위 하도급 계약서를 한난에 제출하는 등 총 16건의 계약 중 6건을 이같은 방식으로 작성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 결과 수급인은 12억여 원의 이익을 얻게 되었으며 하수급인은 같은 금액만큼 손해를 입게 되었다.

한난 관계자는 “동탄-고덕 연계 열수송관 배관공사의 부당 특약 계약 조건에 대해 변경 계약을 완료했으며 하도급 계약 체결 시 관리 감독을 강화하기 위해 전 사업장에 해당 사항을 안내하고 교육을 진행했다”며 “중앙지사 중앙열원시설 개체공사 하도급 계약관리 부적정 사항에 대해서도 해당 협력업체 A를 지자체에 통보했으며 하도급 계약 시 확인 절차를 전 사업장에 안내했다”고 해명했다.

다만 하도급 계약 시 관리감독 부실로 발생한 하도급업체의 피해에 대해서는 “수급인인 협력업체 A와 하도급업체 간의 계약”이라는 입장을 전달하며 책임을 회피했다. 하지만 계약부터 준공까지의 모든 과정과 준공 이후의 안전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 것은 발주처인 한난이다. 하수급인이 해당 공사에 참여하고자 할 때는 그로 인한 이윤 창출에 앞서 발주처에 대한 신뢰가 우선 작용한다. 신뢰를 기반으로 하도급 업체를 보호해야 할 공공기관이 책임은 커녕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발주자의 하도급계약 점검·승인 의무화' 외면하는 공공기관

한난은 2차 이하 협력사를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인 제도 개선을 시행하기로 했다. 하도급 부당 특약과 하도급 적정성 심사 검토를 위한 체크리스트도 마련해 계약상대자 하도급 승인과 통보 시 해당 체크리스트 제출을 의무화했다.

체크리스트에는 ▲하도급 관리 계획 준수여부 ▲하도급 통지기간 준수 ▲하도급자 자격의 적정성 ▲하도급 비율 검토 ▲건설기술자 자격 적정성 ▲표준 하도급계약서 사용 ▲하도급율 산정 시 제 경비 ▲물가변동 등 반영 여부 ▲키스콘 건설공사 대장 통지여부 등을 확인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한난 관계자는 “하도급 통보 시 ‘부당특약 부존재 확인서’를 원도급자와 하도급자 모두에게 제출을 의무화화해 불공정 관행을 개선했다”며 “하도급 관련 내부 기준 정비하고 하도급 관리 실무자 매뉴얼을 제작해 배포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내부 기준 개선 등을 통해 하도급 협력사 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공동주택(APT)을 대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집단에너지 분야에서 한국지역난방공사는 보급 실적이 전체 사용 세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시장지배적 지위를 갖고 있다”며 “공기업이 협력업체를 통해 하도급 업체에게 부당한 비용 부담을 전가해도 일감 수주를 위해 요구대로 계약을 할 수밖에 없고 불만을 제기하는 즉시 시장에서 퇴출 당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주무부처인 기재부 관계자는 “정부는 하도급 계약 시 불공정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발주자의 하도급계약 점검·승인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공공기관이 하도급계약을 승인하면서 부당 특약과 저가 하도급 등 불공정한 계약에 대한 검토가 부실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발주처의 관리·감독 소홀에 대한 처분을 더 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감사원 주의 처분 이후 한난은 후속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현실적으로 개선 효과를 체감할 수 없는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원인과 구조적인 개선 없는 사후약방문 대책으로는 공공기관의 갑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아직도 많은 공공기관들이 경영평가 등을 의식한 무리한 예산 절감을 위해 하도급 계약 시 불공정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계약규정이 모호하거나 미비해 공공기관에 유리하게 적용해도 하수급인은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구조다. 계약 관리와 감독상의 한계도 있어 보인다.

한난의 경우 2018년 기준으로 1019건의 공사를 시행했다. 발주량이 없는 해에도 최소 300건 이상의 공사를 발주하고 있다. 업계는 계약관리·감독을 철저히 할 수 있는 시스템 확충은 물론 불공정 행위 발생 원인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개선하는 행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공공부문 공사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불공정 관행 적발 시 솜방망이 처벌이 아닌 강력한 규제와 처벌이 있어야 갑질이 원천 차단될 수 있다”며 “현실에서 체감할 수 있는 정부 대책이 수립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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