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하는 공공기관] ① 위험 외주화·책임 전가 등 사기업보다 더한 중부발전

김수은 기자 승인 2020.06.22 17:10 | 최종 수정 2020.06.22 22:12 의견 0
한국중부발전 박형구 사장 (자료=한국중부발전)

최근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와 '갑질'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모범이 돼야 할 공공 부문에서조차 계약업체 등을 상대로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는 사례들이 종종 드러난다. 

감사원이 지난해 시행한 '공공기관 불공정관행 및 규제 점검' 감사 결과에서도 불공정 행위는 무더기로 드러났다. 공공기관 49개를 대상으로 계약·하도급·대국민서비스·조직 내부 등 분야에서 총 165건의 불공정 행위를 조사한 결과 하도급 계약 때 부당 특약 요구 · 관리 및 감독 부실 · 경쟁 입찰할 수 있는 연구용역을 수의계약하는 등 불공정 행위가 다수 적발됐다. 이에 본지는 '공익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들'의 불공정 행위를 6회에 걸쳐 연속 보도한다. <편집자 주>

 

[한국정경신문=김수은 기자] 한국전력공사 계열의 화력발전 업체인 한국중부발전의 박형구 사장은 2018년 취임 일성으로 '행복 경영'을 선언했다. 직원과 국민이 모두 만족하는 경영이 '행복경영'이다.

하지만 박 사장 재임중 감사원에서 지적받은 사항들을 보면 공공기관으로서 '불공정 관행(갑질) 청산 활동'에는 크게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 약자인 하도급 업체들에게는 중부발전의 '행복경영'이 공허하게만 들리는 이유다.

일례로 중부발전은 지난 2017년 12월 ‘2018년도 보령 3·4호기 기계설비 하도급공사’ 계약을 진행했다. 공사 중 안전사고로 인해 발생하는 책임을 하수급인(하도급 공사의 도급을 받은 건설업자)이 부담하도록 하는 등 2건의 부당 특약이 있었지만 이를 묵인한 채 승인해 논란을 일으켰다.

■ 공공기관도 ‘위험의 외주화’ 만연, 업체와 근로자에 책임 전가

22일 감사원과 업계에 따르면 중부발전이 당시 승인한 부당 특약은 사실상 '노예 문서'로 회자된다. 한마디로 모든 책임을 하도급을 받은 개별 사업자에게 떠넘기는 셈이기 때문이다. 업체 입장에서는 계약을 따내기 위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수용할 수 밖에 없다. 사기업과 별반 다를 게 없거나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이 더하다는 얘기마저 나오는 것도 이미 '관행'처럼 따라 다닌다.

실제로 당시 특약에는 ▲하도급자 귀책 사유로 발생한 안전사고는 하도급자가 모든 책임을 진다 ▲안전사고 발생 시 인명피해에 대한 재해보상은 하도급자가 책임을 진다 ▲안전사고 발생 시 도급자를 상대로 일체의 민·형사상 청구를 포기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감사 결과, 이같은 부당 특약뿐만 아니라 중부발전은 안전 관리에도 소홀히 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18년 8월에는 ‘신보령발전본부 종합정비동 신축공사’ 진행 계약을 체결하면서 ‘산업안전보건법’ 등에 따라 공사비에 반영하도록 규정돼 있는 안전관리비를 공사원가에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여 안전한 일터를 조성해야 할 의무가 있는 공공기관이 ‘위험’을 외주화해 근로자의 소중한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충남 보령시에 위치한 한국중부발전 전경. (자료=한국중부발전)

■ 하도급에 원도급보다 더 많은 납품 지연 부담..감사원 "주의 처분"

중부발전은 지난 2018년 10월 '신서천화력 전기집진기 구매'와 ‘보령·인천 발전본부 내 태양광 공사’ 계약 시 하도급 지체상금률을 원도급보다 높게 설정한 사실도 드러났다. 지체상금은 납품이 지연될 때 사업자에게 징수한다. 이 역시 하도급 업체에게 상대적으로 규정보다 더 많은 부담을 지게 하겠다는 꼼수다.

'신서천화력 전기집진기 구매' 계약을 체결할 때는 하도급 수급인인 A업체가 지체상금률을 원도급보다 최소 2배에서 최대 66배(0.15%/일 → 0.3∼10%/일) 가량 높게 설정했다. ‘보령·인천 발전본부 내 태양광 공사’ 계약 시에는 원도급보다 4배(0.075%/일 → 0.3%/일)까지 상향해 약정했는데도 내부 검토를 소홀히 해 하수급인의 권리가 침해됐다는 지적을 받은 것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사후 조치에 대해 “하도급 계약을 승인하면서 부당 특약에 대한 검토가 부실하게 이뤄지지 않게 감독을 철저히 하고 예정가격 작성 시 산업안전보건관리비와 안전관리비를 미반영하거나 감액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도급 지체상금률을 원도급보다 높게 설정한 건에 대해서도 중부발전 사장에게 불공정한 하도급 계약에 대해 수급인에게 변경을 요구하는 등 적절한 조치방안을 마련하도록 통보했다”면서 “앞으로 하도급 관리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주의'를 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중부발전 관계자는 “지난 2월 18일 도급자에게 관련 부당 특약으로 지적받은 계약 조항의 변경을 요구하고 해당 조항을 삭제했다”며 “안전관리 수립계획이 필요한 공사에 대해 안전관리비를 공사원가에 포함해 안전에 빈틈이 없도록 하고 부당한 계약으로 하수급 업체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 기재부 "여전한 불공정 행위 뿌리 뽑기 위해 강력한 조치 필요“

교통·전기·가스 등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규모의 투자가 이뤄지는 공사를 발주하는 곳은 주로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에서 공정거래 질서는 공공 부문에서도 사기업의 간의 거래 때와 같거나 더 심한 경우까지 있다는 게 현실이다.

업계 관계자는 “입찰부터 준공까지 공공기관이 부당한 비용을 전가하고 안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도 일감을 수주하기 위해서 공공기관의 요구대로 계약할 수밖에 없고 불만을 제기하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범 정부적인 차원에서 공공기관의 불공정 관행 근절을 위해 지난 2018년 10월 ‘공공기관 갑질 근절 방안’을 마련해 현재까지 진행중이다.

주무 부처인 기재부 관계자는 “공공기관들이 민간업체와의 계약관계에서 예산 절감 등의 이유로 각종 비용이나 부담을 계약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등 불공정 행위가 여전하다”며 “주의 처분 이상한 강력한 조치 시행으로 불공정 행위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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