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백화점' 한국마사회..기수 60% "부당지시 거부땐 불이익" 승부조작 주범

최태원 기자 승인 2019.12.13 14:14 의견 0
지난 12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고 문중원씨의 유가족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들이 '고 문중원동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자료=연합뉴스)

[한국정경신문=최태원 기자] 한국마사회의 총체적 부조리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3일 민주노총에 따르면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은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 공공운수노조는 서울, 부산·경남, 제주 지역 등에서 일하는 전체 경마 기수 125명 중 75명을 대상으로 한 노동·건강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 "다친 말을 타도록 지시를 받은 경우는 무려 93.3%"

문 조사에 참여한 기수들 중 60.3%는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없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지시에 거부하면 경기 출전 기회가 줄어들거나 문제있는 말을 배정해 기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등의 불이익이 따른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기수 자격 자체를 박탈하는 경우조차 있다고 했다. 

이 같은 부당한 지시는 승부조작과도 연결된다. 다친 말을 타도록 지시를 받은 경우는 무려 93.3%에 달했다. 승군전(더 높은 군에 출전하기 위한 레이스) 순위 조작 지시를 받은 경우도 35%를 넘어선다. 

실제로 이 같은 부조리로 인해 지난 11월 29일에는 마사회가 운영하는 렛츠런파크 부산·경남 소속 기수 문중원 씨가 비리 의혹을 담은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유서를 통해 문씨는 조교사의 부당한 지시, 마방을 받는 과정에서의 부조리 등을 폭로했다. 

문씨의 경우는 지난 2015년에 조교사 면허증을 땄지만 5년동안 마방을 받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문씨는 마사회 특정 직원과의 친분이 중요하다며 유착 의혹을 제기한 바도 있다.

사실 문씨만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아니다. 공공노조운수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이후 부산경마공원에서만 목숨을 잃은 기수와 말관리사가 4명에 달한다. 마사회가 사실상 기수, 조교사, 마방 등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구성원들은 '거대한 힘'인 마사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마사회가 기수·조교사·마방 등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에 1~10점으로 답해달라는 설문에 59.4%가 10점을 줬다. 10명중 6명은 마사회가 전권을 휘두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셈이다.

■ 부산경마공원에서만 목숨 잃은 기수와 말관리사 4명 달해

망한 문씨의 유족은 조교사 부당 지시와 마방 배정 과정의 불공정함을 폭로하는 한편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글도 올렸다. 노조는 유족으로부터 장례 위임을 받았지만 진상 규명이나 책임자 처벌, 공식 사과 등이 나올 때까지 장례도 연기한 상태다.

물론 마사회는 문씨의 유서에 언급된 간부를 직위 해제하고 경찰조사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한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한국마사회 부산경남지역본부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최근 기수들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참석한 기수는 3명뿐이었다. 마사회에 대한 불신이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익명의 한 기수는 "평소에는 전혀 기수들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다가 사고가 터졌을 때만 보여주기식으로 간담회를 하는 것 같아 참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마사회는 상황 수습에만 신경 쓰지 말고 진짜 기수들이나 경주마 관계자들이 원하는 것에 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일갈했다.

마사회는 조직적이고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지만 비리 집단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수 년 전부터 '부패 백화점'이라 표현까지 듣고 있는 마사회다. 보여주기식 혹은 땜방식의 일시적인 조치가 아닌 본질적인 체질 개선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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