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치가 움직이는 나라 독일
김성수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성수교수
승인
2023.04.03 10:44 | 최종 수정 2023.04.03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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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공무 때문이기는 하지만 교수가 학기 중에 해외로 출장을 다녀온다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3년간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불가피하게 비대면으로 강의를 진행하다가 지난 학기부터 비로소 강의실에서 직접 학생들과 만나서 정상적으로 활발한 토론의 기회가 주어졌는데, 다시 비대면 녹화강의로 대신한다는 것이 일단 학생들에게 무척 미안한 일이다. 물론 지난 수년 동안 비대면 강의에 익숙한 학생들에게는 오히려 당분간이라도 부담스러운 교수의 모습을 직접 보는 일 없이 편리한 시간에 녹화로 수강하는 것이 반가울 수도 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갖는 것이 필자의 착각이나 오해에 불과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출장지 독일의 3월 말 날씨는 그야말로 변화무쌍의 극치를 보여주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 세미나 중 참가자 일부가 창문 밖으로 함박 같은 눈이 내리자 환호를 하고 사진을 찍는 일까지 있자 잠시 연사가 이야기를 중단하면 잠시 후에는 구름이 걷히고 다시 햇볕이 내려 쪼이는 일이 반복되었으니 말이다. 독일 사람들은 같은 날에 맑음, 흐림, 비 오는 날씨를 흔히 “세 가지 날씨”(Drei-Wetter)라고 하는데, 출장 중에는 여기에 눈까지 더해져서 “네 가지 날씨”(Vier-Wetter)라는 흔치 않는 경험도 한 셈이다. 날씨가 춥다보니 자연스럽게 휴식시간이나 잠자리에 들기 전에 외출을 삼가고 TV를 시청할 기회가 많았는데, 3월 27, 28일 독일연방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사민당, 녹색당, 자민당의 정책 관계자들이 마라톤 회담을 통하여 2050년을 지향하는 독일 정부의 장기 정책구상을 눈여겨 보면서 독일이라는 국가의 정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사민당과 녹색당은 큰 틀에서 보면 이른바 진보적 철학과 비전을 공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기후변화 시대에 극단으로 치우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에너지 전환정책을 추구하는 녹색당과 일반 서민 대중의 민생과 복지를 강조하는 사민당이 구체적인 정책의 수립과 시행과정에서 상당한 갈등과 알력을 보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다가 연립내각의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자민당은 기업의 자유와 시장경제를 정체성을 하는 자유주의적 보수정당으로서 사민당, 녹색당과 함께 같은 배를 타고 있으니 정치적 필요에 따라서 작년 말에 물리적으로 결합한 연방정부가 과연 순항할 수 있을지 독일은 물론 유럽연합 차원에서도 우려 섞인 시선이 존재하여 왔던 것이 현실이다. 특히 교통 부문은 기후변화와 에너지 전환에 대응하는 핵심 분야이기 때문에 녹색당은 연정 합의 과정에서 교통부 장관직을 반드시 가져온다는 전략을 추진했다. 하지만 연정을 보이콧 하겠다면서 줄타기 전략을 고수한 자민당의 강력한 요구로 교통부 장관 자리는 자민당이 차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기후변화와 에너지원의 전환이라는 연정의 최종적 목표보다는 기업과 산업계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자민당은 고속도로 속도제한 도입, 철도 등 대중교통 강화와 개인 승용차에 대한 불이익,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 등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였다. 그래서 과연 이틀간 이 문제를 최종 결정하는 연방정부위원회(Koalitionsausschuss)가 합의안을 도출할 수 있을까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지만 연방정부를 구성하는 세 정당은 휴식시간도 거의 없는 회의 끝에 최종안을 3월 28일 발표하였다. 협의안의 내용은 방대하지만 그 골자는 일단 교통 부분과 에너지 전환정책으로서 화물자동차에 대한 통행료를 인상하고 그 수입의 80%를 철도에 투자하며, 자민당이 주장한 140개의 고속도로를 건설, 개보수하는 계획을 신속하게 추진하되, 이러한 고속도로 운영에 필요한 에너지는 반드시 태양전지로 충당하도록 녹색당의 입장을 수용하였다.
물론 세 정당은 각자가 추구한 목표치에서 상당한 양보가 불가피 했고 직접 협상에 참여한 위원들은 각자가 속한 정당에서 싫은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는 국민과 상대방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최선이 아니라 차선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정부의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하고 국민과 국가 전체의 이익을 해하지 않도록 피악(避惡)하는 길을 선택하는 기술이다. 그래서 소수자 등 그 누구의 의견도 일방적으로 무시하지 않고 어떠한 내용이나 형태로든 정책에 반영하려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 생산적인 결과를 만들어 가는 것을 목표로 추구하는 독일의 정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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