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의 한산대첩"..완주 소양면 '웅치전투' 430주기 기념식 화제

최창윤 기자 승인 2022.08.06 19:35 의견 0
한산대첩과 웅치전투가 벌어진 지 정확히 430년이 흐른 5일 오전 11시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일원의 ‘웅치전적비’ 현지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자료=완주군]

[한국정경신문(완주)=최창윤 기자] 영화 ‘한산 : 용의 출현’은 1592년 여름 음력 7월 8일 한산도 앞바다에서 조선의 운명을 건 지상 최고의 해전, 한산대첩을 장엄한 스케일로 그려낸다.

영화는 바다의 한산대첩이 있을 때, 동시에 육지에 벌어진 의병들의 전투 씬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의병들이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웅치(熊峙)에서 왜군과 전투를 벌이는, 이른바 ‘육상의 한산대첩’으로 불릴 만한 ‘웅치전투’의 한 장면이다.

한산대첩과 웅치전투가 벌어진 지 정확히 430년이 흐른 5일 오전 11시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일원의 ‘웅치전적비’ 현지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임진왜란 당시 웅치고개에서 왜군에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산화한 선인들의 넋을 위로하고 민족자존의 긍지를 높이기 위한 ‘제430주기 웅치전투 기념식’이다. 영화 ‘한산 : 용의 출현’ 인기와 맞물려 이날 기념식은 여느 해와 다른 분위기가 감지됐다.

진혼곡 연주와 조총 발사, 헌화와 분향, 유족 대표 인사, 헌시와 헌무, 웅치의 노래 등으로 이어진 기념식에는 각계에서 100여 명이 대거 참석했고, 왜군의 전주성 진입을 저지하여 호남을 지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렸다.

유희태 완주군수는 이날 “해상에 한산대첩이 있을 때 육상에서는 ‘웅치전투’가 치열하게 벌여졌다”며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 덕분에 오늘날 우리 일상과 대한민국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제 밤에 영화 ‘한산 : 용의 출현’을 관람하고 웅치전투 희생자의 넋을 위로했다”며 “웅치전투의 역사적 가치를 살리고 호국완주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그동안 웅치전적지를 사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며 “전북도에서 문화재청에 지난 7월 사적 지정을 신청해 심의 받은 만큼 문화재청 의견에 따라 문화재구역을 보완해 재신청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웅치전투의 의병장인 황박 장군과 정협 장군의 후손인 황석규 씨와 정완철 씨는 유족을 대표해서 “웅치전투의 항전이 임진왜란 초기 호남 방어에 결정적인 분수령이 돼다”며 “웅치전적지를 사적으로 추진해 민족자존의 긍지를 높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웅치전투’는 1592년 진안에서 전주로 넘어가는 완주군 소양면 웅치 일대에서 벌어진 조선 관군·의병과 왜군의 전투이다.

학계에서는 웅치전투는 임진왜란 초기 조선의 최대 위기 상황에 완주군 소양 일원에서 왜군의 예봉을 꺾어 전선 확대를 저지한 전투로 조선이 육상에서 실질적으로 승리의 최초의 전투이자 한산대첩과 함께 ‘약무호남 시무국가’의 시원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아울러 그 동안 유명무실하게 비추어진 당시 조선군을 웅치전투의 사례를 통해 안정적인 지휘체제 하 최초로 관군이 의병과 합동으로 전투를 벌여 호남을 지켜냈다는 면에서 임진왜란사적으로 재인식할 수 있는 학술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완주군은 이러한 웅치전투의 역사적 가치를 국가적 차원에서 인정받고자 전투지로 추정되는 일원을 국가사적으로 지정하는 절차를 이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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