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의아한 넷플릭스의 '무정산' 논리..망사용료 회피 시간끌기 의심

송정은 기자 승인 2022.05.20 12:32 | 최종 수정 2022.05.20 12:55 의견 0
IT 과학부 송정은 기자


[한국정경신문=송정은 기자]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 간의 치열한 '망사용료' 지급 법적 분쟁이 더욱 정교해지고 첨예해지고 있다.

특히 넷플릭스가 '무정산 합의' 여부를 새로운 쟁점으로 들고 나오면서 정면돌파를 시도하자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양 측의 갈등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는 지난 18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채무부존재 확인소송 항소심 2차 변론에서 이 '무정산 합의' 여부를 놓고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먼저 '무정산 합의'가 무엇인지 간단히 살펴보자.

흔히 '빌앤킵(Bill and Keep)'이라는 용어로도 대체되는 무정산 합의는 서로 직접적인 대가를 주고받지 않아도 사실상 정산을 한 것으로 인정하는, 우리 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로 설명하자면 '퉁친다'의 의미에 가깝다.

여기에는 전제 조건이 필요한데 정산을 한 것으로 인정하는 각 대상자가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 간의 갈등에 대입해서 설명하면 이 '빌앤킵' 원칙은 ISP(인터넷사업자)는 ISP끼리, CP(콘텐츠 제공자)는 CP끼리 적용을 해야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넷플릭스는 이른바 '무정산 방식'을 통해 전 세계 7200여 개 ISP(인터넷사업자)과 자체 CDN인 오픈커넥트를 연결하고 있으며 이러한 무정산 방식은 SK브로드밴드와의 연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즉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가 '망 이용료'에 대해 처음부터 상호 무정산이라는 점을 알고 대가 없이 연결한 것이므로 인터넷 망을 사용한 비용은 SK브로드밴드가 부담하는 것이 온당하다는 것이다.

특히 국제비영리기관 Packet Clearing House(PCH)의 2021년 192개국 1500만개 피어링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 세계에서 이뤄지는 피어링(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끼리 서로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트래픽을 교환)의 99.9996%가 무정산이며 나머지 0.0004%만이 페이드 피어링, 즉 망 이용량에 따라 사용료를 지불하는 정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글로벌 인터넷 서비스의 관점에서 '송신 ISP'에, SK브로드밴드는 '착신 ISP'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새롭게 내놓았다. 이 주장은 SK브로드밴드가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국내 CP들로부터는 '송신 ISP'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들로부터 망사용료를 받는 것이 맞지만 글로벌 CP인 넷플릭스의 경우 '착신 ISP'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용료를 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좀더 풀어서 설명하면 넷플릭스가 그동안 망사용료 지급 불가의 이유로 들고온 'OCA(오픈 커넥트)'가 'CDN(Content Delivery Network, 데이터를 분산된 서버에 저장하는 시스템)'의 역할이 아닌 SK브로드밴드 네트워크와 피어링으로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자신들도 일종의 'ISP'의 역할을 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일종의 동등한 ISP의 자격으로 '무정산 합의' 원칙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망사용료를 낼 이유가 없다는 것이 요지다.

이에 SK브로드밴드 측도 조목조목 반박에 나섰다.

먼저 넷플릭스 주장의 근거가 된 PCH 통계에 대해서 "넷플릭스가 PCH 통계의 의미를 왜곡하고 있다"며 "PCH 통계에는 트랜짓(Transit, 계약을 맺은 고객에게 전 세계 글로벌 인터넷에 연결하기 위한 라우팅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이 빠져있으며 CP와 ISP간의 계약관계 역시 빠져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PCH 통계는 ISP와 CP 사이에서 '무상'이 원칙이라거나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가 무상합의를 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넷플릭스가 자신들도 ISP에 해당한다는 논리에 대해서도 "ISP를 단순히 착신ISP, 송신 ISP로 나눌 수 없으며 더욱이 넷플릭스를 착신 ISP라고 말할 근거도 없다"며 "넷플릭스의 OCA는 단순히 CDN의 역할을 할 뿐, OCA가 기간통신역무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ISP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SK브로드밴드 측에 따르면 동등한 수준에서 논의되어야 할 '무정산 합의'는 이 둘의 관계에서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굳이 SK브로드밴드 측의 주장을 보지 않더라도 자신들이 ISP의 역할을 한다는 넷플릭스의 주장은 의아함을 자아낸다. 넷플릭스가 자신들을 ISP 역할까지 해내기에 성립될 수 있다는 무정산 합의, 즉 '빌앤킵' 원칙도 전화통신산업이 주축이었던 과거에나 유효하고 통신산업이 더욱 복잡하고 정교해진 현 시대에는 부적합하다.

미국 포브스(Forbes)지에 시니어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덴마크 올보르대학의 로슬린 레이튼(Roslyn Layton) 박사도 "전화통신산업의 네트워크에서는 서로 주고받는 트래픽 양이 대체적으로 동일했다"며 "하지만 지금과 같은 인터넷 시대에 넷플릭스 같은 CP는 초고용량의 트래픽을 전송하지만 SK브로드밴드 같은 ISP는 동일한 양의 트래픽을 넷플릭스에게 보내지 않는다"며 빌앤킵 논리의 부적합성을 지적한 바 있다.

한 이통업계 관계자도 "국내 CP들은 망이용료를 정당하게 지급하고 있는 상황에서 넷플릭스의 이 같은 시간끌기 전략은 오히려 역효과만 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넷플릭스의 현 상황은 이런 주장을 들고 와서라도 한국에서 벌어지는 망사용료 분쟁에서 이겨야 하는 판국이다. 각국이 엔데믹 시대에 접어들면서 넷플릭스 가입자 수는 급격히 떨어지고 있고 주가마저 폭락하는 위기에 처해있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미국이라는 1티어 네트워크 국가의 지위를 이용해 국가간의 무역 분쟁으로 옮기려는 움직임까지 포착되고 있다.

넷플릭스가 새롭게 들고 나온 논리를 자세히 살펴보면 헛점이 많이 드러난다. 이렇게 헛점 많고 복잡한 가정이나 조건이 많아질 수록 오히려 참인 명제가 명확히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어보인다.

그 명제는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의 망을 이용해서 한국 소비자들에게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넷플릭스는 망 이용대가를 내야한다"는 간단한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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