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출범했다. 새 정부 출범으로 금융 분야에서도 크고 작은 변화가 예상된다. 앞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를 통해 새정부의 금융정책이 일부 윤곽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규제 완화를 통한 시장친화적인 정책 추진이 예상되는 가운데 청년·서민층을 위한 지원책도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내외적으로 불확실한 경제환경 속에서 새 정부가 금융 시장의 개혁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살펴봤다. <편집자주>
[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금융규제 완화를 통한 금융시장 활성화를 표방한 윤석열 정부가 금융소비자 보호에도 팔을 걷어부쳤다. 과거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와 최근 잇단 은행권 횡령 사고로 금융권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 정부의 금융소비자 보호 정책이 더욱 탄력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는 금융 분야 핵심 과제 중 하나로 금융소비자 보호 및 권익향상을 꼽았다. 일상과 밀접히 관련된 금융제도를 개선해 국민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금융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에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내놓은 ‘110대 국정과제’을 살펴보면 ▲예대금리 산정의 합리성·투명성 제고 ▲간편결제 페이 수수료 부담 완화 ▲금융소비자 피해 구제제도의 실효성 제고 ▲은행 모바일 OTP 사용 확산 등이 추진 과제로 선정됐다.
■ 예대금리·결제 수수료 공시 강화
우선 예대금리 공시제도는 윤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강조한 대표 공약 중 하나다. 전체 은행의 예대금리차를 비교공시하고 공시 주기도 기존 3개월에서 1개월로 줄이는 방안이 추진된다.
금융당국과 은행권 공동의 ‘예대금리 공시개선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세부방안을 마련하고 연내 ‘은행업감독업무 시행세칙’을 개정한다는 계획이 세워졌다.
정부는 예대금리차 공시 확대를 통해 소비자-은행간 정보불균형을 해소하고 은행간 금리경쟁을 촉진하는 기반이 구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관치금융의 우려를 제기하고 있지만 지난해 기준금리 인상 이후 은행들이 역대 최대 수준의 예대마진을 거둬들이고 있는 만큼 공시 확대의 당위성은 갖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빅테크 기업이 소상공인 등에게 부과하는 간편결제 수수료에 대한 공시 제도도 추진된다. 신용카드와 달리 빅테크 기업은 자체적으로 간편결제 플랫폼의 가맹점 수수료율을 정하기 때문에 신용카드 결제수수료보다 3배 이상 높아 소상공인의 부담이 크다는 문제의식에서다.
당초 선거 공약에서는 ‘동일기능 동일규제’ 원칙에 따라 간편결제 수수료도 신용카드 등과 같이 준수 사항을 정부에서 정할 계획이었지만 당선 이후 공시 시스템을 마련해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다소 완화된 것이 눈에 띈다.
빅테크 업계도 소상공인 부담을 낮추기 위한 수수료 인하 정책에 뒤늦게 동조했다. 올해초 카드 수수료 인하에 맞춰 카카오페이와 네이버파이낸셜이 영세 사업자 수수료를 0.1~0.3%p 인하한 것이 대표적이다.
금융당국과 관련 업계는 오는 19일 첫 TF 회의를 개최하고 결제 수수료 공시 시스템 구축을 위한 논의를 시작한다.
■ 소비자 구제 속도↑
금융소비자 피해 구제기구인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 위상도 커진다. 윤 정부가 분조위 운영의 독립성을 제고하고 신속상정제(패스트트랙) 제도 도입을 통해 분쟁 처리기간을 단축하는 방안을 추진해서다.
분조위는 금융 소비자가 금융기관을 상대로 제기하는 분쟁을 조정하는 기구다. 분조위는 내부 2인, 소비자단체 4인, 금융계 4인, 법조계 10인, 학계 14인, 의료계 1인 등 35명 이내로 구성된다. 금감원 내부 인원이 2명에 불과하지만 나머지 위원들은 소비자 단체나 금융기관 등으로부터 추천받은 사람을 금감원장이 위촉하는 방식으로 선임되기 때문에 금감원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된다.
기자가 입수한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 따르면 정부는 소비자단체 위원 비중을 확대하고 회의참석 위원 선정의 공정성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연내 유관기관의 의견을 수렴해 분쟁조정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내년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령 등 개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 금융소비자 신뢰 회복에 방점..시민단체는 “글쎄”
윤석열 정부는 규제완화를 통한 친시장 정책을 표방하고 있지만 금융분야에서 만큼은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정부의 감시·감독과 통제 기능 강화에 방점 찍었다.
지난 수년간 이어진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와 최근 은행권 거액의 횡령 사고로 금융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금융소비자 보호와 권익 향상을 통해 금융시장에 신뢰회복을 도모하겠다는 복안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새정부 출범 이후 양대 금융당국 수장의 교체가 예정된 만큼 금융소비자 보호 정책의 기조에 맞는 후임 인사가 선임될 것으로 관측된다. 새 금감원장 후보군에 검찰 출신 인사들이 대거 이름을 올린 점이 이를 방증한다. 검사 출신 금감원장이 임명되면 기존 금감원보다 검사·감독 기능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금융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윤석열 정부의 금융정책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을 갖고 있다. 지난 보수정권들과 마찬가지로 결국엔 친시장·친기업 정책으로 일관하지 않겠느냐는 관점에서다.
재벌개혁경제민주화네트워크는 지난 12일 진행된 긴급좌담회에서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가 규제완화·산업지원으로 점철됐고 취약계층 보호보다 기업의 자유만 강화됐다고 평가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경제개혁연대 노종화 변호사는 “금융소비자 보호 및 권익 향상을 위해 분쟁조정위원회 독립성 강화와 금융민원 패스트트랙제도 도입 등 국정과제의 충실한 이행 및 사후적 구제장치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사무금용노조연맹도 지난 9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정부의 금융정책에 구체적 내용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재진 위원장은 “(금융분야 국정과제로) 디지털 환경 하에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및 금융산업의 역동성 제고를 내걸었지만 이를 실행하기 위한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아예 국정과제에서 생략돼 있다”며 “금융산업은 일반 사기업과는 달리 금융소비자들의 자본을 바탕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공적인 성격이 강하고 책임감 있는 금융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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