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금융 겸업주의 논의, 또 다른 ‘밥그릇’ 싸움 안 되려면

윤성균 기자 승인 2021.12.03 10:46 의견 0
윤성균 금융증권부 기자

[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은행권이 또 ‘금융 겸업주의’ 논의의 운을 뗐다. 기존 금융 겸업주의 논의가 업권간 ‘밥그릇 싸움’이었다면 이제 초점은 빅테크와의 싸움으로 옮겨갔다. 기저에는 ‘금융은 특별하다’, ‘은행은 특별하다’는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이 자리잡고 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전날 ‘디지털시대 금융 겸업주의’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은행연합회가 금융 겸업주의를 주제로 금융권 관계자를 모아 세미나를 개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거 정책 제언 차원에서 은행연합회에서 은행의 겸업주의를 요구한 바 있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자못 다르다.

은행권 관계자 뿐만 아니라 금융지주, 증권사, 학계 전문가를 아우르는 토론자의 면면에서도 인식의 변화가 느껴진다. 겸업주의가 단순히 은행의 보험·증권 겸업 허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전업주의는 여러 종류의 금융기관이 각각 자신의 전문 금융업무만을 수행하고 다른 금융업무 참여를 제한하는 제도를 말한다.

반대로 겸업주의는 은행고유업무인 예금과 대출 외에도 증권, 보험, 투자은행 업무까지 참여해 종합적인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전업주의가 원칙이지만 2000년 금융지주회사 설립과 2009년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금융회사간 겸업이 부분적으로 허용됐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투자자문업 등을 놓고 은행과 증권사간 기싸움은 있었다.

빅테크의 등장은 기존의 이러한 갈등구도 마저 깨버렸다. 강혜승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이날 세미나에서 “4대 상장 금융그룹 합산 시가 총액보다 카카오의 핀테크 자회사 두 곳(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 시가 총액이 더 큰 상황”이라며 “미래가치 창출에 대한 투자자의 기대감의 격차가 얼마나 큰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규제 불균형 때문이라는 것이 기존 금융권의 분석이다. 그래서 등판한 것이 금융 겸업주의다. 빅테크 플랫폼의 등장으로 전업주의 원칙의 의미가 퇴색된 만큼 겸업주의로 금융산업을 재편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은행의 겸업주의 허용에는 항상 위험이 뒤따른다. 수년간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도 겸업주의의 폐해로 볼 수 있다.

겸업주의가 단순히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수단이라면 제2, 제3의 라임펀드 사태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날 토론에서 사회를 맡은 서정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도 “굉장히 혼란스러운 시기고 이거야 말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며 “금융업권 간의 파이싸움, 금융과 비금융간의 파이싸움으로 전개되기보다는 전체 파이를 키워 모두가 윈윈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빅테크의 등장으로 금융시장이 혼란스러운 시기인 것은 맞다. 겸업주의의 등판도 그만한 명분이 있다고 보인다. 다만 겸업주의 논의의 출발점이 원스톱 금융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요구에 있고 대원칙은 소비자의 편익 증대라는 점을 금융사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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