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오징어게임' vs '지리산'..OTT진흥법이 능사 아니다

송정은 기자 승인 2021.11.12 11:22 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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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과학부 송정은 기자

[한국정경신문=송정은 기자] 지난 11일 저녁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UAE(아랍에미리트) 대표팀 간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최종예선 5차전 경기가 열렸다.

경기 시작 2시간 전 쯤 직관이 어려운 친구들이 퇴근길에 스마트폰으로 경기를 보는 방법을 묻기 시작했다. 쿠팡플레이라는 OTT(Over The Top) 서비스에서 독점 중계를 해준다고 하니 몇몇은 놀라는 눈치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을 쫒아오지 못한 한 친구는 중계 방송사가 지상파가 아닌 tvN이라는 것에 한 번, 스마트폰으로 보기 위해서 네이버가 아닌 쿠팡이 만든 별도의 앱으로 봐야한다는 것에 두 번 놀란 눈치다.

또 다른 친구가 탄식에 가까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제 국대 축구 경기도 OTT로 보는구나.”

불과 몇 년 전 OTT가 뿌리를 내리고 있던 시기에 OTT 서비스에 가입하는 이유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한 시리즈 전체를 끊지 않고 보기 위해서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특정 콘텐츠를 보기 위해서 특정 OTT에 가입해야만 하는 경우가 생겼다. 위에서 언급한 국가대표축구 경기 같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때문에 소비자들은 여러 OTT 서비스에 중복 가입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게 됐다.

그래서 국내 시장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는 OTT 서비스들은 ‘오리지널’ 콘텐츠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 콘텐츠를 보기 위해서는 이 플랫폼에 가입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제성을 바탕으로 신규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물론 이 전쟁에는 거대한 자본과 오랜기간 축적된 노하우를 지닌 글로벌 점유율 1위 넷플릭스와 12일 국내에 상륙한 ‘IP(지적재산권) 왕국’ 디즈니플러스가 유리할 수 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일까. 이른바 토종 OTT 3대장으로 불리는 웨이브(wavve)와 티빙(TVING), 왓챠(WATCHA)가 입을 모아 국회에 계류돼있는 ‘OTT 진흥법’을 속히 처리해달라며 지난 11일 성명서를 냈다.

토종 OTT서비스들은 막강한 가입자와 자본을 바탕으로 둔 글로벌 OTT 기업들이 국내 시장을 잠식한다면 단순히 온라인 서비스 영역을 넘어 방송, 영화, 콘텐츠 제작시장 등 미디어 산업 전반에 역동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OTT 서비스 경쟁은 사업자들의 몫이지만 국내 OTT 서비스들이 제대로 성장해 해외에도 진출하고 국내 콘텐츠 산업에 지속 기여하도록 관련 법안 처리 등 정책적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첫 번째 요구안은 ‘전기통신사업법개정안’의 통과다. 현재 국회 과방위 법안심사소위에 계류 중인 해당법안은 OTT 서비스 업체에게 ‘특수 유형 부가통신사업자’ 지위를 부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세제지원 등 국내 OTT진흥정책을 위한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 골자다.

다음은 ‘OTT 자율등급제’이다. OTT가 콘텐츠에 과감한 투자를 하더라도 영상물 등급 심의 기간이 너무 길어 제 때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고충을 해소할 수 있는 게 이 ‘OTT 자율등급제’다.

이들은 문체부가 입법예고한 ‘영화 및 비디오에 대한 개정법률안’이 OTT서비스를 ‘온라인비디오물제공업’으로 지정하는 것을 전제로 자율등급제 도입을 추구하고 있기에 관련 부처 동의를 얻지 못하는 등 빠른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고 있다고 호소했다. 또 이 때문에 국내OTT 사업자들이 수많은 콘텐츠를 창고에 넣어둔 채 이용자들에게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의 요구에 속히 응답할 필요가 있다. 투자자와 플랫폼은 양질의 콘텐츠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해 이익 얻을 권리가 있으며 소비자들은 지불한 비용만큼 즐거움을 줄 콘텐츠를 즐길 권리가 있다. 정부의 규제가 이들의 발목을 붙잡는 것은 곤란하다.

특히 지나치게 긴 영상물 등급 심의 기간이 콘텐츠에 대한 투자 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도 염두해야할 것이다. 투자자를 찾지 못해 몇년을 헤매야 했던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과 같은 사례를 또 만들 이유는 없다.

관련법안 처리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도 토종 OTT서비스들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자칫 신규 가입자 유치에만 매몰돼 수준 이하의 콘텐츠를 대량생산하며 OTT 시장 전체의 질을 떨어뜨려서는 안된다.

일례로 티빙의 두 가지 오리지널 콘텐츠를 살펴보자.

티빙을 통해 서비스되고 있는 tvN 토일 드라마 '지리산'은 오징어 게임(약 254억원)보다 더 많은 제작비(약 300억원)와 전지현이라는 톱스타를 투입하고도 소비자들에게는 '쓸데 없는 PPL 범벅의 수준 이하 드라마'라는 혹평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 '술꾼도시여자들'은 블록버스터 콘텐츠와는 비교도 안되는 적은 제작비를 갖고도 2030 직장인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스토리와 배우들의 열연으로 최근 티빙에 큰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티빙에 따르면 해당 콘텐츠의 3,4회가 공개된 이후 시청 UV(순 방문자 수)는 이전에 비해 2.5배 상승했으며 유료 가입자 기여 수치는 4배 가량 뛰었다고 한다. 제작비 규모가 콘텐츠의 질과 인기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격언이 OTT 시장에서는 더 피부에 와닿는 상황이다.

정부는 OTT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관련 법안들을 조속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또 토종 OTT 서비스들은 한층 더 '볼만한 가치'가 있는 콘텐츠 제작과 배급 등에 힘 써야한다. 소비자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K-콘텐츠'를 소비해야할 의무는 없다. 언제든 터치 한번으로 '구독 취소'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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