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임윤희 기자] 국내 배터리 3강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이 1조원대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권을 놓고 재격돌한다. 단순한 물량 경쟁이 아니라, 탄소중립 시대 전력시장 주도권을 가를 본격적 ‘2차 대전’이 예고됐다.

LG에너지솔루션 전력망용 ESS 배터리 컨테이너 (사진=LG에너지솔루션)

22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전력거래소는 이달 중 2차 ESS 중앙계약시장 입찰 공고를 낼 예정이다. 총 540㎿(육지 500㎿, 제주 40㎿) 규모 사업으로 평가액만 1조원에 달한다. 입찰은 안전성과 산업기여도 평가 항목의 비중이 확대됐다

사업은 ‘질적 경쟁’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졌다. 입찰에서 비가격 평가 비중이 40%에서 50%로 높아졌다. 단순한 국내 생산 비율보다 산업 기여도와 안전성, 운영 안정화 능력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업계는 이번 변화가 국내 ESS 생태계의 구조적 변화를 촉진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시간 공장을 앞세워 글로벌 양산 체제를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지난 6월 세계 최초로 미시간에서 ESS 전용 배터리 대량 생산을 시작했다. 북미 주택용 ESS 출하가 본격화하면서 3분기 영업이익은 601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4% 증가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세액공제 효과를 제외해도 2358억원을 벌어들였다.

LG엔솔은 중국 난징 공장의 LFP 배터리 일부 라인을 국내로 옮기고 충북 오창 공장의 설비를 ESS 전용으로 전환 중이다. 국내 생산 비중을 높이면서 가격경쟁보다 ‘안정성+공급망 전략’으로 평가 항목 대응에 집중한다.

삼성SDI는 1차 입찰에서 전체 ESS 물량의 76%를 확보하며 시장 우위를 입증했다. 고출력·고안전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배터리 기술을 앞세웠다. 또한 전기안전공사와 MOU를 맺고 ESS 및 UPS(무정전전원장치) 안전 표준 개발에 참여 중이다. 공공기관과의 협력은 이번 입찰 평가에서 신뢰도 가점을 얻을 수 있는 요소로 꼽힌다.

삼성SDI 내부에서는 이번 입찰을 ‘국내 ESS 시장 2차 도약의 관문’으로 본다. 지난해 이후 내수 비중이 낮았던 만큼 이번 사업에서 산업 생태계 참여도를 강화해 수익 다각화를 꾀한다는 전략이다.

SK온은 LFP 배터리 안전성과 대용량 분산형 ESS 기술을 앞세워 판을 흔들고 있다. 이석희 사장은 최근 “ESS는 전기차 이후 핵심 성장 동력”이라며 “액침 냉각 기술과 화재 조기 진압 솔루션으로 글로벌 ESS 시장을 선도하겠다”고 강조했다. 회사는 충남 서산 공장의 일부 전기차 배터리 라인을 LFP 기반 ESS 생산라인으로 전환 중이다. 안전성을 높이면서도 단가를 낮출 수 있어 공공 전원망 ESS에는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다.

ESS는 단순한 저장 장치가 아니다. 전력망 효율을 높이고 재생에너지의 간헐적 공급을 보완해 전력 품질을 안정화하는 핵심 인프라로 평가된다. 전기요금 체계 합리화, 피크 부하 완화, 탄소배출 감축에 이르는 기능적 가치가 커지며 ‘전력산업의 하이엔드 기술’로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ESS 시장은 태양광·풍력 발전과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에 힘입어 2028년까지 연평균 20%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배터리 업계 전문가는 “전기차 시장의 성장 둔화 속에서 배터리 3사가 ESS를 차세대 먹거리로 재편하고 있다”며 “이번 입찰은 기술력, 생산체계, 안전성까지 모든 역량이 총동원되는 ‘ESS 판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