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이진성 기자] 정부가 산업재해 사고에 대해 강하게 압박하면서 국내 주요 건설사들이 현장 사고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다. 대표 명의의 사과와 현장 중단이 기본 매뉴얼이 된 상황에서 기존 현장의 공사기간을 연장하는 방법까지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경영 활동은 보장하는 대신 사회적 비용을 물리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산업재해 CG (이미지=연합뉴스)

8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롯데건설과 대우건설, GS건설 등은 최근 현장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바로 현장 작업을 중단했다. 또 사고 발생 당일 모두 대표 명의의 사과문을 발표하는 등 즉각적인 현장 점검도 약속했다. 건설사들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공기를 늘릴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인건비 등에 따른 공사비 증가가 불가피해져 재건축 현장의 경우 조합원에게 추가 분담금이 청구될 가능성이 큰 게 문제다.

시공사의 안전 조치 미흡 여부 등의 원인이 밝혀지기도 전에 건설사들이 이같이 발빠르게 반응하는 배경은 정부의 고강도 규제 예고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포스코이앤씨 현장에서 잇따른 사고가 발생하자 면허 정지와 공공사업 입찰 제한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압박했다. 이달 초에는 민간분양 페널티까지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반복되는 건설 현장 사고에 대해 강력한 조치를 꺼낸 셈이다.

이같은 압박에 일부 건설사들은 진행 중인 현장도 기존 공기보다 늦추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사고가 대부분 비용 절감 등의 이유로 공기가 타이트한 문제로 발생하는 이유에서다.

물론 현실적으로 공기 연장을 위해서는 충분한 근거가 필요하다. 설계도서의 변경·보완, 공사 발주 지연, 승인 절차 지연, 예측 불가능한 외부 요인 등이 분명해야 하고 발주자와 시공사 간의 협의 과정도 필요하다.

하지만 시공사가 현실적으로 현 공기 내에 작업 진행시 사고 발생 우려가 높다는 명분을 내세우면 발주자가 이를 막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가령 시공사가 안전 사고를 우려해 공기 연장을 제시했는 데 이를 거부할 경우 발주자가 법적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른바 '노란봉투법'은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면 원청도 사용자로 간주한다.

즉 시공사가 안전 사고에 대한 정부 기조를 반영해 외부 요인 등으로 공기 연장을 요청할 시 발주자가 거부할 경우 사용자가 될 수 있는 구조다. 시공사는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라도 발주자에게 공기 연장을 신청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현장 사고를 막으려고 한다면 가장 먼저 공기를 여유롭게 잡으면 된다"며 "다만 진행 중인 현장의 경우 발주자, 시공사, 조합 등의 이해관계로 사회적 갈등이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건설사들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공기를 늘릴 수밖에 없는 데 이 경우 인건비 등에 따른 공사비 증가가 불가피해진다.

특히 재건축 현장에서는 추가 공사비를 놓고 건설사와 조합원간 소송전도 예고된다. 공기가 연장되면 비용 증가로 추가 분담금이 조합원에게 청구되는 구조로 현장 곳곳에서 이같은 잡음이 뻔하다는 게 건설업계의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사고 발생시 먼저 건설사가 도의적 책임(위로금 등)을 지도록 하는 대신 경영 활동은 위축시키지 않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고 발생시 피해자 등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도록 하면 그 비용 부담을 우려해 자연스럽게 안전 관리에 투자하게 되는 선순환이 완성된다는 설명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기조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진다는 부분은 차라리 현실적이다"며 "건설사의 과실이 확인되지도 않았는 데 사업 참여 제한 등 압박을 가하는 구조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