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가 본격 추진되면서 전통 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 두 진영의 전략적 갈림길이 선명해지고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가 본격 추진되면서 전통 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 두 진영의 전략적 갈림길이 선명해지고 있다. (이미지=챗GPT)
거대 플랫폼 생태계를 무기로 한 인터넷전문은행은 그룹 차원의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속도전에 나섰다. 반면 전통 시중은행들은 협의체를 중심으로 공동 전선을 구축하며 안정성에 무게를 싣는 모양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각 원화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안을 공동 발의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민생 현안에 우선순위가 밀렸던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에 다시 불을 지핀 것이다.
이번에 발의된 법안들은 지난 6월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했던 ‘디지털자산기본법안’보다 한층 구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두 법안 모두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의 자격 요건을 ‘자기자본 50억 원 이상의 금융회사 또는 상장 주식회사’로 명시하고 발행액의 100% 이상을 현금성 자산으로 보유하도록 하는 등 강력한 규제안을 담았다. 사실상 민간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는 구체적인 청사진이 제시된 셈이다.
기회가 구체화되자 먼저 움직인 곳은 플랫폼 기반의 인터넷은행과 빅테크 기업들이다. 카카오, 네이버, 토스 등은 이미 막강한 결제 인프라와 플랫폼 생태계를 갖추고 있어 스테이블코인 도입 시 파급력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다.
카카오 그룹은 카카오,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대표 이사로 구성된 스테이블코인 TF를 출범, 매주 회의를 통해 사업 추진 전략을 점검 중이다. 플랫폼, 결제, 수탁 등 사업 3요소를 모두 갖춘 점을 강점으로 내세우며 카카오 공동체간 시너지 극대화를 노린다.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도 김규하 최고사업책임자(CBO)가 이끄는 스테이블코인 TF를 꾸렸다. 토스뱅크, 토스증권, 토스페이먼츠 등 금융 계열사 3곳이 참여해 그룹 차원 대응에 착수했다.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과의 협력을 통한 결제 시스템 구축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전략은 명확하다. 인터넷은행인 카카오뱅크와 토스뱅크가 그룹 TF의 핵심 멤버로 참여해 기존 플랫폼 생태계와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은행의 안정성과 페이의 결제 편의성, 플랫폼의 방대한 사용자 데이터를 결합해 새로운 디지털 금융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복안이다.
이들은 협의체 중심의 더딘 합의 과정을 거치기보다 그룹 내부의 신속한 의사결정을 통해 시장 선점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반면 전통 시중은행들은 ‘안정성’과 ‘리스크 관리’에 방점을 찍고 공동 대응에 나서는 모습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13개 은행은 오픈블록체인·DID협회(OBDIA) 스테이블코인 분과에 참여해 공동 연구와 기술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스테이블코인이 가져올 금융 시스템의 변화와 잠재적 리스크를 신중하게 평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개별 은행이 단독으로 사업을 추진하기보다는 협회 차원에서 기술 표준을 마련하고 규제 당국과 소통하며 공동의 합작법인(JV)을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공동 대응의 큰 틀 속에서도 물밑 경쟁은 치열하다. 주요 은행들은 이미 자체 스테이블코인 관련 상표권을 다수 출원하며 시장 선점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국민은행은 시중은행 중 가장 먼저 원화 스테이블 코인 관련 상표권을 등록한 데 이어 최근 달러와 엔화 스테이블코인 관련 상표권도 출원했다.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넘어 글로벌 스테이블코인의 유통에 대한 가능성 역시 엿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협력과 경쟁을 병행하며 다가올 시장에 대비하는 이중 전략을 구사하는 셈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아직 법제화가 추진 중인 단계로 구체적인 사업 방향을 논하기는 어려운 단계”라면서도 “전반적인 흐름을 예의주시하며 대응 속도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