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임윤희 기자] AI 데이터센터의 폭발적 전력 수요 증가로 초고압직류송전(HVDC)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국내 전선업계 LS전선과 대한전선이 글로벌 시장 선점을 위한 수조원 규모 투자 경쟁에 나섰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LS전선은 동해공장 확장으로 생산능력을 4배 늘렸고 대한전선은 4972억원을 투입해 당진에 신공장 건설을 결정했다. 두 회사 모두 AI 시대가 요구하는 장거리 고효율 송전 케이블 시장에서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LS전선 초고압 직류(HVDC) 케이블 (사진=LS전선)
■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바꾼 시장 구조
HVDC(초고압직류송전)는 고전압 직류를 이용해 장거리 대용량 전력을 효율적으로 송전하는 기술이다. 기존 교류송전 대비 전력손실을 3-5%로 최소화할 수 있다. 해상풍력과 장거리 송전에서는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다.
글로벌 HVDC 시장 급성장의 핵심 동력은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 폭증이다. 최신 AI 가속기인 Nvidia H100 GPU는 700W를 소비해 이전 세대보다 75% 증가했으며, 차세대 GPU는 1,000W 이상을 요구한다. AI 데이터센터들이 전력비용 절감을 위해 발전소 인근으로 이전하면서 장거리 고효율 송전 인프라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글로벌 HVDC 케이블 시장은 2023년 90억 달러에서 2030년 150억 달러로 연평균 7-8% 성장할 전망이다.
■ LS전선 글로벌 톱4 반열 vs 대한전선 글로벌 네트워크로 추격
LS전선은 2007년부터 HVDC 기술을 개발해온 선발주자다. 현재 글로벌 시장점유율 8~10%를 기록하며 글로벌 톱4 업체 반열에 올랐다. 지난달 동해공장 5동을 준공하면서 아시아 최대급 HVDC 생산설비를 완성했다.
LS전선 관계자는 "이번 설비 확충과 함께 정부가 추진 중인 '서해안 HVDC 에너지 고속도로' 사업에도 LS마린솔루션과 공동 참여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세계 최초로 525kV급 고온형 HVDC 케이블 상용화에 성공한 것이 핵심 성과다. 도체 허용온도를 기존 70도에서 90도로 높여 송전 용량을 50% 향상시킨 이 기술은 글로벌 톱3 업체도 아직 달성하지 못한 수준이다.
독일·네덜란드 테네트와 2조원 규모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한 것도 글로벌 경쟁력을 입증한 사례다. 전 세계 케이블업체 단일 수주 중 최대 규모다. 자회사 LS마린솔루션과 연계해 생산부터 시공까지 일원화 서비스도 제공한다.
이에 비해 대한전선은 2017년부터 HVDC 기술 개발에 착수한 후발주자지만 체계적인 글로벌 진출로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현재 글로벌 시장점유율 3~5%를 기록 중이다.
지난 16일 당진 해저케이블 2공장 건설에 4972억원 투자를 결의한 것이 핵심 전략이다. 2027년 가동 목표인 이 공장에서는 640kV급 HVDC 생산이 가능하며 완공 후 생산능력이 기존 대비 5배 늘어날 예정이다.
지난주 대한전선 송종민 부회장은 “해저케이블 2공장 건설을 통해 HVDC 해저케이블 수요 확대에 대응하는 한편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사업 참여 준비가 가능해졌다”고 밝혔다.
대한전선의 강점은 체계적인 글로벌 네트워크다. 유럽 4개 지사와 1개 법인을 운영하며 현지화에 집중한 결과 미국(900억원), 영국(1,000억원), 스웨덴(1100억원) 등에서 분산된 수주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2023년에는 국내 최초로 525kV HVDC 케이블 시스템 국제 인증을 완료했다.
대한전선 당진 해저케이블 2공장 조감도 (사진=대한전선)
■ 유럽·일본 공급 포화..한국 기업에 '절호의 기회'
글로벌 기존 강자들의 구조적 한계와 국내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사업이 맞물리면서 한국 HVDC 업체들에게 내수와 수출 동시 확장의 절호 기회가 열렸다.
현재 글로벌 HVDC 시장은 이탈리아 프리즈미안(30%), 프랑스 넥산스(25%), 일본 스미토모(15%) 등 톱3의 생산 스케줄이 2027년까지 포화되면서 공급 제약을 겪고 있다.
특히 유럽 업체들은 자국 표준 위주 대량생산에 집중해 맞춤형 소량생산에는 소극적이고 일본은 내수 우선 정책으로 글로벌 공급 여력이 제한적이다.
이와 함께 국내에서는 정부가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완공을 2038년에서 2030년으로 8년 앞당기면서 11조원 규모의 확실한 내수 시장이 조성됐다.
업계에선 이러한 이중 기회를 포착한 LS전선과 대한전선이 각각 수조원 규모 투자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LS전선은 동해공장 확장으로 맞춤형 생산 능력을 4배 늘려 유럽 시장 공략에 나섰다. 대한전선은 당진 2공장에 4972억원을 투입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 안정적 성장 기반을 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HVDC 시장은 전형적인 공급자 우위 시장으로 전환됐고 기존 강자들은 2027년까지 생산 스케줄이 꽉 찬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만이 대규모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며 "앞으로 3~5년간 신규 수주에서 한국 업체들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